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의 앞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녀의 세계는 전쟁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종교적 맹신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맹목적인 테러였다.

그녀의 세계는 끊임없는 환경오염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인구 과잉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가난과 기아와 빈곤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부유층이 출현했다.

이들은 다수의 고통을 외면하며 파렴치하게 살아남았다.”

소설에서는 그와 같은 지구 상황을 벗어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모험에 144천 명이 합류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선하고 비폭력인 사람들이다.

전쟁, 종교적 맹신, 테러, 환경오염, 인구 과잉, 부의 격차 등 지구를 황폐하게 만든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없는 순결한 사람들이다.

특히 정부도 없고, 군대도 없고, 종교도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원대한 프로젝트에 의기투합한 사람들이다. 드디어 우주선 파피용호가 지구를 떠나 1,000년 이상의 우주 항해를 시작하고 우주선 안에서는 이 항해의 목적에 충실한 공동체 삶이 영위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우주선 안에서는 그들로 하여금 지구를 떠나게 만든 사건들이 일어난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남자가 옛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처음 발생하고, 그 후 지구에서 행해졌던 일들(규칙, 헌법, 경찰, 의회의 구성)이 재현된다.

시간이 흘러 선한 뜻을 지니고 지구를 떠났던 탑승자 1세대는 생명이 다하여 사라지고, 우주선 안은 천국 도시와 지옥 도시로 나뉘면서 전쟁과 평화를 반복한다. 나중에는 종교도 발생하고 결국에는 종교 전쟁도 일어난다.

최종적으로 지구를 떠나온 지 1,251년 후 지구에서 2광년 떨어진 행성(JW 103683)에는 단 두 사람 (여자 엘리자베트-15, 남자 아드리앵-18)만이 착륙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의견 다툼 후 갈라서고, ‘엘리자베트-15’는 사망한다. 혼자 남게 된 아드리앵-18’는 자신의 갈비뼈 일부를 잘라내어 인공 태아 배양 후 여자아이 에야(Eya)’를 탄생시킨다.

[출처] 소설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 著
[출처] 소설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 著

에야가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아드리앵-18’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 미래에, 우리 자손들이 다시 수백만, 아니 어쩌면 수십억이 되어 이 지구(새로운 행성 JW 103683) 전역에 살게 될 때, 전쟁과 환경 오염, 종교적 광신주의, 인구 과잉으로 병들었던 우리가 떠나온 세계와 비슷한 세계를 다시 만들게 해서는 안돼

소설 파피용에서는 오욕과 칠정에 휩싸인 인간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지구를 떠나 1 천년 이상 우주를 날아가 새로운 행성을 찾아 갔지만, 결국 인간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우주 탐험의 스토리로 보여주었다.

그림 A. 인간의 다양한 본성
그림 A. 인간의 다양한 본성

지난 연제에서 소개(그림 A)하였던 생존을 위한 투쟁-도피 반응에 충실하며,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쉽게 흔들리고, 비이성적이며, 아만이즘(amanism)에 휩싸이고, 언제든 동물화(animalizatioin)될 수 있는 인간의 다양한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와 같은 인간의 모습은 현재에도 주변에서 언제든 손쉽게 찾아볼 수 있으면, 단지 배우(탤런트)와 촬영 세트만 다를 뿐 수 십 년간 비슷하게 반복되는 TV 드라마-영화 등의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매일 보고 듣고 있는 신문-TV-라디오 뉴스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톱기사의 내용이기도 하다.

영화 '왕의 남자'
영화 '왕의 남자'

역사는 여러 인간들이 뒤엉키어 이루어지므로, 역사의 내면은 곧 인간의 모습이며 인간 이해의 중요한 학습 자료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국민과 나라를 분열시키는 사심 가득한 일부 위정자 및 정치가를 반복적으로 확인될 때마다, 비정치가인 평범한 사람으로서 심한 분노와 실망을 반복적으로 느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의 이성이 아니라, 공심(公心)과 인본주의(humanism)가 아니라, 비인간적(非人間的) 논리에 대한 맹신과 아만이즘으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피폐해지는 민초들의 삶과 위협받는 국가의 안위와 번성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심한 경우에는 상대방의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거두어 간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국력과 국부가 극도로 쇠진하고 빈약해져,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에서 결국에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으로부터 빈번한 침략을 자초하였고, 북한의 6.25 남침에도 속수무책으로 국민은 철저히 짓밟히고 수 많은 목숨을 잃었으며 온 나라는 완전히 황폐화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현대처럼 휴대폰이나 통신망이 없어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나누지 못해서 그러했을까? 혹은 비행기와 자동차와 같은 빠른 이동 수단이 없어 의견 차이를 조정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까? 혹은 컴퓨터 및 인터넷을 이용하여 최신의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일까?

혹은 그 당시의 교육 수준이나 내용이 현재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낮아서 그렇게 되었던 것일까?

하지만 현재에도 비슷한 상황들이 회사라는 작은 조직부터 대한민국 전체의 큰 조직에서 그리고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니, 문명의 발달이나 지식 혹은 교육 내용의 차이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림 B. 마키아 벨리의 어록
그림 B. 마키아 벨리의 어록

역사학의 석학들(그림 B)역사를 잊은 국민과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라고 말하고는,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역사는 반복된다”.

막심한 재산과 시간의 탕진은 물론 피해 받은 사람들의 깊은 상처 등 이미 지난 과거에 수없이 반복하여 충분히 경험하였지만, 비슷한 상황이 21세기 현재에도 또다시 반복되고 있으며 아마도 미래에도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소설 파피용에서 그리고 지난 역사와 현재의 여러 사실에서 보여주듯이, 과학 문명이 더욱더 발달하고, 삶의 수단이 더욱더 편리해지고, 경제적으로 더욱더 윤택해진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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