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구스타브 레오나르 드 쟝 (제작년도 미상)
『모성애』 구스타브 레오나르 드 쟝 (제작년도 미상)

꽃 화분 하나 없고 거무틱한 배경의 응접실에 엄마와 두 아이가 있다. 두 아이는 펑퍼짐한 흰 드레스 속 3 줄의 검정색 레이스로 장식된 분홍색 원피스를 똑 같이 입어 자매로 짐작된다.

자매 중 더 어려 보이는 아이가 엄마 품에 착 감기듯 안겨 있다. 오른팔은 엄마의 어깨에 턱 얹혀 놓고 반대편 어깨에 올려진 머리는 자연스럽게 뒤로 젖혀져 엄마 품의 안락함을 만끽 중이다.

의자 깊숙이 기대 앉은 엄마는 품에 안긴 딸이 행여 떨어질까 소중히 두 손으로 감싸고, 딸아이가 행여 깰까 숨소리를 최대한 얕게 유지한다. 다정히 부둥켜안은 모녀는 둘이 아니라 서로 녹아 들어 한 몸이다.

그림 『모성애』 부분
그림 『모성애』 부분

그러한 모녀의 두어 발짝 앞에 언니가 서 있다. 언니의 오른손에는 고급 천으로 멋지게 장식한 인형이 들려져 있고, 몸은 인형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의 눈은 인형이 아닌 바로 자신 앞에 한 몸처럼 껴안은 엄마와 동생을 향하고, 얼굴 표정이 결코 밝지 않다.

새끼 손가락을 입에 물고 엄마와 동생 쪽으로 비껴 기울인 얼굴에는, 엄마 품에 안겨 사랑을 독차지한 동생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심이 배어있다. 동생에 대한 엄마의 편애에, 언니는 마치 한 가족이 아닌 이방인처럼 뻘쯤하다.

『새어머니』 니콜라스 기지스 (1882-1883년)
『새어머니』 니콜라스 기지스 (1882-1883년)

새어머니가 젖을 먹이면서 무척 흐뭇한 표정으로 갓난 아기를 내려다본다. 엄마 젖가슴에 한 손을 올려 놓고 열심히 젖 빨고 있는 아이는 어찌나 만족스러운지 두 다리 축 늘어뜨린다.

바로 옆에 짙은 문양으로 장식한 원피스와 빨강 구두로 앙증맞게 차려 입은 어린 여자 아이가 작은 걸상에 올라 어머니에게 적극적으로 의견 피력한다.

어머니 젖의 달콤한 옛 추억을 아직도 간직한 듯 아이는 동생이 코 박고 먹는 젖을 좀 달라고 깨금발 딛고 포동포동한 팔을 한껏 뻗친다. 젖을 먹이는 어머니과 어머니 젖을 두고 펼쳐지는 두 자녀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에 만족과 도타움이 한가득이다.

『새어머니』 (부분)
『새어머니』 (부분)

약간 떨어진 앞쪽 아무것도 깔지 않은 토방 위 소녀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새어머니와 아이들을 향하여 앉아 있다.

그런데 새어머니에 껌 딱지처럼 붙어 있는 어린 아이의 밝고 귀여운 복장과 달리 이 소녀의 옷은 매우 칙칙하고 투박하다.

소녀의 머리를 둘러싼 마치 히잡 같은 두건도 어둠침침하고, 옹골지게 다문 입과 흰자위가 훤히 드러나게 치켜 뜬 눈에는 노기가 가득하다.

새어머니와 이복동생들에 대한 불만과 미움이 무척 사무쳐 있는 듯하다. 아마도 새어머니로부터 본인의 자존심과 안위에 관련되어 공정하지 못한 대우나 구박이 오랫동안 있었을 듯싶다.

숨소리도 들릴 정도 거리의 새어머니 면전임에도 숨김 없이 드러난 얼굴 표정에서, 지난 세월 새어머니로부터 소녀가 겪은 상처가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림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 부분
그림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 부분

지난 연재에서 소개하였던 그림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에는 한창 실랑이 중인 부부 사이에 한 아이가 등장한다.

벌겋게 상기된 양 볼, 아빠를 쳐다보는 두 눈 그리고 엄마의 치마를 힘껏 움켜잡은 쪼끄만 손에서 공포(두려움)가 짙게 배어 있다.

어린 시절에 겪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및 성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경험은 공포, 두려움, 불안, 절망, 우울, 분노의 감정을 유발하고, 어린 아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깊은 상처를 입혀 마치 단단한 암석에 또렷이 새겨진 글씨처럼 깊게 각인된다.

그림 A. 상처받은 마음 속 아이
그림 A. 상처받은 마음 속 아이

어린 시절은 자아 이미지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인데, 부정적 사연을 경험하면 자아 이미지가 심각하게 왜곡 및 손상된다. 그와 같이 왜곡-손상된 자아 이미지는 부정적 기억과 감정을 간직한 채 무의식, 즉 자신 내면의 깊고도 깊은 잠재의식에 상처받은 마음 속 아이로 존재한다 (그림 A).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신체는 자연스러이 진행되는 생물학적 성장을 꾸준히 지속하여 겉 모습은 건장한 어른 육체를 갖춘다.

하지만 무의식 깊은 곳의 마음 속 아이는 왜곡-손상된 자아 이미지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 기억과 감정의 상처를 지닌 어린아이 상태로 정지된 채 머물러 있다.

그러한 마음 속 아이는 나이 지긋한 어른도 순식간에 '철부지 어른adult child'으로 만들어 버리고, 살면서 마주하는 사안마다 현재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실제 현실actual reality'이 아닌 과거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심리적 현실psychic reality'로 데려간다.

상처 입은 '마음 속 아이'는 마치 LP 레코드판에 파 놓은 홈처럼 혹은 아웃풋이 미리 정해진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혹은 특정 영상을 담은 필름처럼 살면서 마주치는 사안마다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LP 레코드판의 고정된 홈은 백양백색의 턴 테이블에서 항상 동일한 음악을 들려주며, 컴퓨터의 아웃풋이 정해진 프로그램은 입력한 테이터의 종류에 관계없이 항상 동일한 결과를 보여주고, 특정 영상이 박힌 필름은 어떠한 불빛을 비추더라도 항상 동일한 장면을 재현한다.

마음 속 아이가 형성된 것은 오랜 과거지만, 그 아이는 마치 LP 레코드판의 홈, 컴퓨터의 확정 프로그램 혹은 특정 영상을 담은 필름처럼 작용한다.

그리하여 현재 생활 중 특정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일정한 패턴의 감정반응과 행동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출한다. 비합리적이고 유치한 형태의 감정반응과 행동이지만, 여과없이 그리고 순식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본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상처 입은 '마음 속 아이'을 간직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우려되는 상황은 다음 세 가지이다. 하나는 주변 사람과의 불화이다.

성인이 되어 공식적 교육과정도 마치고 능력을 갖추어 직장에 취직하고, 인연이 닿는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꾸린다. 직장과 가정에서 여러 사람과 섞여 살다 보면 언제나 이런 저런 사안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감정이 유발되고, 행동하고, 말하고 또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상처 입은 '마음 속 아이'는 그와 같은 여러 상황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강력히 관여하여, 마치 꼭두각시를 조정하듯 당사자의 뇌, , 팔다리를 원격 조정하여 주변 사람과의 갈등을 유발한다.

다른 하나는 어린 시절 상처를 입혔던 부모에 대한 무의식적 앙갚음이다. 본인은 성인이 되어 육체는 건장해지고 또한 나름의 능력을 갖추어 재력과 위세가 당당해진다.

이제는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부모의 울타리에서 독립할 수 있게 된다. 그때 부모 대한 과거의 앙금이 무의식적으로 서서히 표출된다.

부모는 이제 나이가 들어 사지근육은 줄고 체력도 쇠하고 경제력도 빈하고 통제력도 없어져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꼴이다. 부모가 그와 같은 상황임에도 상처 입은 마음 속 아이는, 과거의 기억을 수시로 끄집어내 다양한 방식으로 부모에게 분풀이한다.

그림 B. 기억 상기 [그림출처: 영화 '인사이드아웃']
그림 B. 기억 상기 [그림출처: 영화 '인사이드아웃']

마지막 하나는 질병 발생의 가능성이다. 건강을 해치는 감정반응과 행동을 유발하는 마음 속 아이가 질병예방과 건강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감정반응과 행동이 오랜 동안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으로 발현되면서 습관으로 견고하게 굳어 버리기 때문이다.

반복하여 강조하지만 육체는 물질이고,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는 반복 자극에 손상되고 종국에는 질병으로 진행한다.

원만하게 풀어내지 못한 '상처 입은 마음 속 아이'는 살면서 불현듯 과거 기억을 떠올리거나(그림 B) 혹은 현재 생활 중 비슷한 사연을 마주칠 때마다, 어린 시절에 경험하였던 동일한 감정(공포, 두려움, 분노 등)에 또다시 휩싸인다.

그러면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태어날 때부터 탑재된 '적응(생존)반응'이 반사적으로 작동되면서, 외부 물질(, 담배, 고지방식 등)을 유입하거나 내부에서 양날의 검같은 유해 물질을 왕성히 생성하여 전신에 뿌린다.

그와 같이 외부에서 유입된 혹은 내부에서 생성된 물질은 육체를 자극하게 되고, 그러한 상황이 장기간 반복되면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의 손상과 질병을 피할 수 없다.

그림 C. 어린시절 부정적 경험에 따른 성인 질병 발생 [출처;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네이딘 버크 해리스 M.D. 著]
그림 C. 어린시절 부정적 경험에 따른 성인 질병 발생 [출처;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네이딘 버크 해리스 M.D. 著]

어린 시절 부정적 경험과 성인기 질병 발생의 관계에서 어린 시절 부정적 경험치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인이 되었을 때 건강을 해치는 습관과 질환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의 학대(정신적, 신체적, 성적)와 가정 내에서의 여러 문제(약물남용, 정신질환, 피학대 엄마, 범죄행위)의 경험 범주와 성인 질환발생을 비교하였을 때, 경험 범주가 많을수록 우울증 4.6 , 2 , 허혈성 심장병 2.2 , 뇌졸증 2.4 , 당뇨병 1.6 , 만성폐질환 3.9 , 심한 비만 1.6 , 자가 면역질환이 2.4배 증가하였으며, 기대수명이 20년이 짧았다 (그림 C).

그림 D. 암 환자의 인생 이력/ [출처; '마음의술' 칼 사이먼트 M.D. 著]
그림 D. 암 환자의 인생 이력/ [출처; '마음의술' 칼 사이먼트 M.D. 著]

500명 이상 암 환자의 인생 이력을 조사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현상이 관찰되었다 (그림 D). 조사 대상의 암환자들은 유년기에 고립, 무시, 긴장된 인간관계 등으로 인하여 절망의 감정을 강렬하게 경험한다.

청년기에는 의미 있는 인간 관계, 일 성취 등으로 감정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그 후 장년기에 지인의 죽음, 이주, 자녀 출가, 은퇴 등으로 오랫동안 잊혀 졌던 유년기 상흔이 재현되면서 절망의 감정을 다시 느낀다.

그림 E. 과식(폭식)을 유도하는 상처 받은 마음 속 아이
그림 E. 과식(폭식)을 유도하는 상처 받은 마음 속 아이

어린 시절 앞서 기술한 부정적 경험을 겪은 경우 성인 질병의 발생이 높은 이유는, 여러 사람들과 섞여 살면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 반응에 조절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의 강도가 낮은 수준의 상황에서도 적응 반응이 빈번하게 또한 과도하게 작동된다.

그와 같은 현상이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수 십 년 동안 작동되고, 그때마다 몸 내부에서는 양날의 검같은 화학물질이 반복적으로 생성된다.

또한 스트레스 적응 반응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서, 음주, 끽연, 과식(폭식), 운동부족, 약물남용 등 건강을 해치는 습관이 은연중에 형성된다 (그림 E).

그림 F. 그림 속 권위적 존재들
그림 F. 그림 속 권위적 존재들

마음 속 아이는 자아 이미지가 형성되는 어린 시절, 부모님, 학교선생님 등과 같이 권위적 존재(그림 F)에 의하여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본 연재를 보시는 독자분들께서 꼭 기억하셔야 할 점은, 현재 본인은 자녀의 마음 속 아이에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권위적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조심하시고 조심하시고 또 조심하시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그동안 본인께서 무의식적으로 어린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셨다면, 반드시 자녀들에게 부모가 처음 되어봐서 잘 몰랐었다혹은 어떠한 식으로 든 자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시고 필요한 경우에는 용서를 구하실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러한 과정 없이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가정 혹은 사회 생활 중 인간 관계의 불협화음으로 고생하거나 혹은 심신의 질병이 발생하여 병원을 찾게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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