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나는가./ 혼자만 뜨거운가./ 불처럼 옮겨 붙을 위험은 없는가.”

한국의사시인회 홍지헌 회장의 신작시 체온에 대하여에 나오는 구절이다. 의사인 그는 매일 환자의 체온을 잰다. 요즘은 더욱 조심스럽다. 혹시 진료실을 찾은 환자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열이 나고, 그 열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번져 또 다른 환자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독백을 이어간다.

나는 따뜻한가./ 점점 식어가는가./ 함께 나눌 온기가 남아 있는가.”

시집 '진료실에 갇힌 말들' 표지
시집 '진료실에 갇힌 말들' 표지

코로나로 우울해진 삶 속에서 혹시라도 남을 배려하는 내 마음의 온도가 한참 내려가지 않았을까 되짚어보는 것이다. 환자의 체온은 올라가면 안 되고 나의 체온은 내려가면 안 되는 미묘한 역설 속에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서로 끈끈하게 엮여야 제대로 굴러갈 세상의 이치가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국의사시인회가 지난 15일자로 아홉 번째 시집 <진료실에 갇힌 말들>을 펴냈다. 이 시집은 홍 회장을 비롯한 20명의 회원이 각각 세 편씩 자작시를 갹출하여 총 66편의 시로 꾸며졌다.

홍 회장은 시집 서문에서 모두의 삶이 황폐해진 상황에서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진단하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없는 이 때 우리들의 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소박함 심정으로 시집을 출간했다고 전했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가 정말 두려운 것은 그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두려운 법이다. 어디 코로나뿐이랴. 세상사가 그러하다. 시집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는 유담 회원(유형준 한림대 명예교수)의 시 <안약>은 그 점을 잘 드러내준다.

그럼요,/ 안 보이는 게 무게를 탐하면/ 보이는 것보다 더 무거워지죠// 요 며칠 눈이 무거워 들른 병원/ 의사가 안약에 말을 섞었다

이러한 시들이 팍팍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잔잔한 공감과 위안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지금 모두가 함께 이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한 경험들을 시인들이 대신 시로써 드러내줄 뿐이다.

이번 시집에 시를 게재한 시인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홍지헌(연세이비인후과의원 원장) 한경훈(하남성심병원 신경외과장) 김기준(2016년 등단) 한현수(분당 야베스가정의학과 원장) 최예환(봉화제일의원 원장) 송명숙(아이편한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김완(김완혈심내과 원장) 정의홍(강릉 솔빛안과 원장) 김호준(대전을지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김세영(시전문지 <포에트리 슬램> 편집인) 김연종(2004년 등단) 조광현(온천사랑의요양병원 원장) 권주원(논산 권내과원장) 서화(청라베스트재활요양병원 진료원장) 김승기(2003년 등단) 주영만(1991년 등단) 김경수(부산 김경수내과의원장) 박언휘(박언휘종합내과 원장) 박권수(나라정신과 원장) 유담(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

<현대시학 시인선 072현대시학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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