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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 제1코스 ‘소나무 숲 길’
서울 성북구 이정균내과의원 이정균
2016년 08월 19일 (금) 10:23:25 김은희 기자 news@medworld.co.kr

서울 수도 한복판에 국립공원이 있는 Megalopolis.

북한산 자락 서울 강북구 우이동(牛耳洞), ‘소의 귀를 닮았다’는 예쁜 이름의 산동네에 영험한 소나무들이 군락을 지은 솔숲이 있다. 산속 깊숙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솔숲은 우이동길 대로변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덕성여대 건너편 솔밭공원, 소나무들이 키재기에 뒤질세라 20여m 높이로 쭉쭉 뻗은 채 하늘가득 솔잎 구름 피어내고 있다. 1만 500여 평 공원 안에 수령 100년이 넘는 한 아름 굵기의 소나무 1,000여 그루는 다른 나무들의 범접을 막고 한데 어울려 그 풍채를 자랑한다. 

솔숲에선 솔 향을 담은 은은한 바람이 스치고 솔잎 지붕사이로 햇볕이 부서진다. 솔숲 그늘아래 나들이 나온 주민들은 푸른 소나무의 정기를 들여 마신다. 솔밭공원이 있는 우이동은 서울의 대표적 유원지다. 도선사로 오르는 계곡은 물놀이객들로 붐비던 곳이다. 우이동 탐방의 백미는 북한산 등반이다. 진달래 능선을 통해 대동문이나 백운대로 오른다. 워낙 산 많은 나라 대한민국이지만 수도 한가운데에 국립공원을 가진 나라는 참 드물다. 북한산은 그런 보석 같은 산이다. 북한산 둘레길은 접근도 어디서나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이정표도 잘 정돈돼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우려도 없다. 

북한산 둘레길 44㎞ 구간은 산길, 계곡길, 들길, 숲길, 흙길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숲길에는 소나무 숲, 참나무 숲, 은행나무 숲 등이 있고, 흙길도 마사토, 황토 등 걷는 재미도 만만찮다. 북한산공원 둘레길 총 길이는 70㎞에 이른다. 도봉산 구간은 26㎞이다. 탐방구간의 주요 포인트와 역사문화유적 등을 인식하고 출발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북한산 둘레길은 자연과 역사 문화유적을 6개 지구 13개구간으로 나눠 탐방할 수 있다. 북한산 둘레길 1코스는 북한산에서 가장 많은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 숲길로 부른다. 1코스 끝머리에 있는 솔밭공원에는 1,000그루가 넘는 소나무가 모여 살고 있다. 

 북한산 국립공원 전체코스는 21개이고 그 전체 길이는 71.5㎞에 이른다. 북한산 둘레길1코스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쪽 우이령 입구에서 덕성여대 앞 솔밭근린공원까지 이어지는 약 3㎞ 구간이다. 북한산 둘레길은 그 코스마다 별명이 붙어있다. 1코스는 ‘소나무 숲 길’이라 부른다. 1코스는 북한산 둘레길 중에서도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 동네 마실 길처럼 길은 평탄하다. 해발20~100m를 오르내린다.

1코스의 시작점 우이동 입구에서 600m쯤 올라가면 북한산국립공원 우이분소가 기다린다. 둘레길은 이곳에서부터 산자락과 마을길을 들락거리며 길이 이어진다. 우이동 뒷산에서 주택가로 들어서고, 골목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 산으로 들어와 있다. 이 코스에서는 북한산 상징인 인수봉보다는 북한산 아랫동네마을 주택들을 더 자주 보게 된다. 북한산 둘레길 제1코스는 본래 우이동·수유동·미아동 주민들의 산책길이었다. 

1코스의 명소라면 우이분소 맞은편의 봉황각과 손병희 선생 묘소를 들 수 있다. 북한산을 오르는 초입에 단아한 한옥건물이 서 있다. 봉황각이다. 봉황각은 천도교 교주 손병희선생이 3·1 독립운동을 구상했던 천도교 건물이다.

봉황각은 조선말 1902년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선생(1861~1922)이 천도교 지도자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건립한 교육시설이다. 손병희 선생은 이곳에서 1912년부터 3년동안 수련회를 열고 전국의 천도교 지도자들을 일곱 차례에 걸쳐 49일식 교육했다. 이곳에서는 종교지도자 교육뿐 아니라 독립정신교육이 이루어졌다. 교육을 받은 교역자 483명은 3·1만세 운동의 주도적역할을 맡았다. 3·1운동 33인 민족대표 가운데 15명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교육의 영향력은 지대하였다.

봉황각은 7칸 규모의 목조가옥에 기와지붕집이며 건물 평면이 새 을(乙)자를 이루고 있다. 천도교의 핵심사상인 우주만물의 순환작용과 활동을 형성화한 것이라 한다. 현판의 글씨는 당시 한암 오세창선생이 썼으며 ‘봉황각’이라는 이름은 천도교교주인 최재우의 시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란 낱말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곳 봉황각과 부속건물에는 손병희선생이 1902년부터 7년 동안 거주했으며, 그 당시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봉황각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독립의 일꾼들을 키워 낸 중요한 산실의 역할을 한 곳으로, 지금은 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역사탐방장소가 되고 있다. 

봉황각 건물 옆에는 붉은 벽돌 건물이 서 있다. 우이분소 앞에 있는 이 붉은 벽돌건물은 원래 1921년 종로구 경운동에 지어졌던 천도교 대교당의 중앙총부의 옛 건물이었다. 그것을 1968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에 걸쳐 옮겨 지은 것이다. 의암 손병희는 독립자금을 모을 비밀계획을 가지고 1918년부터 천도교 대교당 건립운동을 추진하였다.

신도들의 대교당 건립헌금을 모으면서 그 성금 중 일부는 1919년 3·1운동자금으로 사용하였다. 3·1운동으로 대교당 건립이 지체되어 1921년에야 종로구 경운동에 대교당이 지어질 수 있었다. 그 당시 대교당 옆에 천도교 중앙총부 건물도 함께 지어졌는데 붉은벽돌로 지어진 연견평 199평의 2층 건물이었다.

수운회관이 15층 현대식건물로 지어지게 되었는데 그 자리가 바로 중앙총부건물이 있던 자리였다. 그 후 중앙총무건물이 지금 자리인 봉황각 옆에 그대로 옮겨졌고, 외부는 물론 내부구조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게 되었다. 이 중앙총부건물은 종로구에 위치할 당시 손병희 사위였던 소파 방정환(1899~1931)에 의해 어린이 운동이 시작된 역사적 장소이며, 우리나라 최초 월간잡지인 <개벽(開闢)>을 발행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천도교 지도자이며 3·1독립운동의 주역인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 선생의 묘역은 우이동 북한산 자락, 3·1운동이 준비되었던 곳, 봉황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 위에 있다. 묘역 둘레에는 낮은 담장이 둥글게 둘러져 있고, 오른편에는 ‘의암 손병희 선생묘’라고 적힌 묘비가, 왼편에는 독립선언서가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손병희선생은 조선말 동학에서 발전한 천도교의 제3세 교주이며 3·1운동을 주도하고 성사시킨 혁명가요, 사상가인 민족의 지도자였다. 선생은 천도교 제2세 교조였던 최시형(催詩亨) 밑에서 종교적 수양을 하며 지도자로 성장한 뒤, 보성학교(현 고려대학교)와 동덕여학교(현 동덕여자대학교)를 비롯한 수십 개 학교를 운영하는 교육사업에 정열을 쏟으셨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데 힘입어 우리나라가 독립국이 되어야 함을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해 독립선언식을 기획하고 각 종교계 인사들을 규합해 나갔다.그리고 마침내 1919년 3월 1일 29인의 민족대표가 태화관에 모여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3·1독립운동은 국내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어 국내외 각지에 8개에 달하는 임시정부가 출현하고 마침내 상해 임시정부를 통합하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3·1운동 주동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10월 병보석으로 출옥한 뒤 그 여독으로 1922년 5월 병사하여 이곳 언덕에 안장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으며, 2012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소나무 송(松)자를 파자하면 ‘木+公’이 된다. 나무 이름 중에 ‘공(公)’과 같은 존칭이 붙은 나무는 소나무 밖에 없다. 나무에 만약 신분이 있다면 그 으뜸은 소나무가 차지해야 한다. 하늘로 솟구쳐 쭉쭉 뻗거나 인고의 세월을 처연하게 품은 아름드리 줄기, 노란 속살을 ‘철갑’으로 둘러친 소나무의 품세는 독립운동역사의 향기가 넘실거림을 느끼게 한다. 

소나무를 선비의 처신과 비교할 때 쓰는 말은 세한(歲寒:날씨가 추워짐)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다.  

“저 소나무는 홀로 우뚝 치솟아서 차라리 꺾일지언정, 굽어지지는 않으며 눈과 서리도 옮길 수 없고, 비와 바람도 흔들지 못한다. 사철을 꿰뚫고 천추의 세월에도 그 가지와 잎을 바꾸지 않는 것은 뜻한 바
가 있기 때문이다.”<송포기(松圃記)>

성삼문의 시 ‘백설이 만건곤할 때 독야청청’은 만고의 충절이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민족의 자존심, 강인한 의지 표현이다. 소나무는 늙어가면서도 기품이 더해간다. 늙음과 기품이 반비례하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품격이 더해가는 소나무, 육체의 쇠락을 한탄하는 인간을 안심시켜 줄 수 있는 영목(靈木) 굳센 소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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