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단지 인간과의 체스 대결만을 목적으로 개발됐으나 현재는 발전을 거듭, 전문지식서비스에서 지식노동을 대체하며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계 역시 인공지능이 진단과 치료를 대신 수행할 수 있는 시대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현재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희망인지 위기인지에 대한 갑론을박도 한창이다. 최근의 인공지능은 뇌스캐닝 기술과 생화학, 양자역학, 생물학, 생명공학, 나노공학, 정보통신기술 등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뇌처럼 패턴인식이 가능해 졌다. 알파고는 모든 수를 초고속으로 연산해서 다음 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이세돌 처럼 쓸모없는 하수들이나 두는 저급한 수들을 배제한 채 고도의 수들만 연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연산은 바둑판 위에서 이루어지는 고도의 패턴을 인식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인공지능은 패턴을 학습해서 인간의 사고와 인식들을 이해하고 재현하는데 그런 학습이 특이점을 넘으면 인간보다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한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다는 이론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본지는 창간 28주년을 맞아 과학계는 물론 의학계의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에 대한 장기적 계획 마련의 중요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에서 향후 보건의료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망해 봤다.[편집자 주]
 
 
▲ 외과, 산부인과, 정신과 대체 가능성 낮아...영상의학, 의무기록 대체 가능 높다
 
4차 산업혁명이 보건의료산업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견해는 일자리 수에 대한 관점으로만 이뤄진 것으로 직업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맥킨지(2015)는 800개 직업의 2,000개 작업 중 45%가 자동화, 이들 중 5%만 완전 대체가 가능한 직업으로 봤다. 즉, 로봇의 노동력 대체가 ‘직업’ 단위가 아닌 ‘할 수 있는 일’ 단위로 평가돼야 하고 자동화로 인해 작업 일부가 대체되더라도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며 기계와 사람이 함께 일의 효율성을 높여 한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자동화로 업무 대체가 일어나게 되면 일자리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테크프로 리서치(Tech Pro Research)의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 조사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의 63%는 인공지능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 반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34%나 달했다. 옥스퍼드대학에서는 702개의 세부 직업 동향을 연구한 결과 미국 일자리의 47%가 컴퓨터화로 인해 없어질 위험에 있다고 발표했다. 또 BCG 리포트에서는 제조업 국가 중 한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로봇 자동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인 것으로 조사됐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에는 전체 업무의 20% 정도를, 2025년에는 45% 정도가 자동화된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중 영향이 적은 기존 일자리는 의사, 간호사 등으로 지능화된 기술을 활용하되 최종 판단 등 핵심 업무는 사람이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2015)도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낮은 직업으로 외과의사, 치과의사, 수의사, 정신과의사, 산부인과의사, 소아과의사, 믈리치료사 등을 선정했다. 영향이 많은 일자리는 클라우드 기술을 통한 외과수술, 영상의학, 의무기록, 의료비심사 및 적정성 평가, 건강관리, 노인돌봄서비스 등을 장기적으로 대체 가능한 분야로 꼽았다.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업으로는 의료사무원, 진료정보관리사, 보험사무원 등이 예상됐다. 
 
 
▲ 의료분야 인공지능 가장 광범위 활용 영역
암 진단 정확도 96%···자궁경부암은 100% 나타내
 
의료 분야는 인공지능이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될 영역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인공지능은 IBM의 ‘왓슨(Watson)’이다. 인간의 뇌를 닮은 컴퓨터로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학습해 수초 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정보를 검증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이미 왓슨은 의사의 임상적 의사결정 지원을 목적으로 사용돼 헬스케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MD 앤더슨 암센터와 ‘종양학 전문가 조언 시스템(Oncology  Expert  Advisor System)’에 대한 협력  결과를 발표, 높은 정확도를 보여주며 환자에게 치료 옵션을 권고할 수 있다고 평가 받았다. 실제로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와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5개 미국대학병원에서 암 진단에 왓슨을 활용한 결과 정확도는 82.6%에 달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대장암은 98%, 직장암 96%, 췌장암 94%, 방광암 91%였고 자궁경부암에서는 100%의 정확도를 보여줬다. 
 
그동안 암 전문의의 초기 오진율이 20~44%에 달했던 만큼 놀라운 결과다. 현재 IBM Watson Health는 데이터 기반 분석으로 의사결정 지원 툴을 개발하고 있으며 피부암 진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Bennet(2013)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환자의무기록을 이용해 학습한 AI와 일반적인 치료방법을 비교한 결과 AI의 경우 치료결과(+41.9%) 및 비용(- 58.5%)에서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방대한 데이터를 주어진 지시에 따라 빠르게 처리해 질문에 대한 답을 적절하게 결합할 수 있지만 그것의 뜻이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답형 퀴즈쇼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현상이다. 빨리 답을 맞히는 단답형 퀴즈는 사실이 처한 맥락을 이해하기보다는 사실적인 정보를 일치시키는 일종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이 말하는 인공지능의 현재다. 아직은 사고과정이 아닌 주어진 정보들의 대응관계를 정확하게 맞추는 수준인 셈이다. 포레스터 리서치(Forrester Research)의 J·P 가운더(J.P. Gownder)는 ‘왓슨’은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사용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의사 고유영역 인공지능진단시스템 대체 시도
‘진단 오류’ 줄이고 ‘검사 남용’ 방지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영상의학 및 방사선의학과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동안 의사의 고유영역이었던 X-ray, 초음파,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양전자단층촬영(PET) 판독이 인공지능 진단 시스템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진의 부족과 인간의 부정확한 판독, 의사 간 판독 편차 등으로 인한 오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 삼성메디슨이 개발한 ‘S디텍트’(위 사진)는 초음파 활용 유방 진단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딥러닝 알고리즘’이 적용된 기기다
최근 삼성전자 의료영상개발팀은 인체 진단 장비에 딥러닝 알고리즘을 적용, ‘S디텍트’를 만들었다. 개발진은 삼성서울병원과의 협업을 통해 의료진이 직접 병으로 변질된 조직의 경계를 그려주고 어느 정도 심각한지 구분해 그 내용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그 결과 의료진이 S디텍트를 진단에 활용할 경우 유방 조직 이상이 의심되는 환자의 환부를 초음파 스캐너로 촬영하고 모니터로 해당 조직 영상 결과를 살핀 후 의심 가는 병변 이미지를 선택하면 학습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작동, 해당 부위의 특성과 악성·양성 여부를 판단했다. 
 
최대 강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단에 쓰이는 데이터 축적량이 방대해지며 더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성영경 개발팀 수석은 “인체 조직이 병에 걸리면 일단 모양이 달라지는데 의료진은 그 형태를 보고 어떤 증상인지를 판단하게 된다”며 “S디텍트는 1만 개에 이르는 유방 조직 진단 사례를 바탕으로 의료진이 유방 병변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신약개발 기간 획기적 단축...천문학적 비용과 시간 절약
 
의료, 제약 부문은 AI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될 영역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결합해 의료 전문가와 제약업체에게 진단, 치료와 관련된 정보부터 통찰력까지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인간의 질병은 1만여 가지인데 특정 상황에서 의료진이 기억해 적용할 수 있는 질병 종류는 이보다 훨씬 적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존스홉킨스대학병원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의료진의 오진으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 수는 연간 4만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AI를 활용할 경우 수백만 종에 달하는 의약품, 유전자 샘플, 혈액 데이터 등 자료가 환자 개개인의 정보와 결합, 진단 및 치료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의료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신약개발의 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후보물질을 선발하는데 AI를 활용한 연구가 주목 받고 있다.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 남호정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와 김상우 연세대학교 공동연구팀은 '컴퓨터를 이용한 약물 지식베이스시스템 연구'를 진행, 70만 4천개의 약물 데이터를 구축하고 약물과 유전자가 상호작용 관계로 연결돼 있음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약물 정보와 약물 기전을 수집해 신약 후보 물질로 가치를 갖는 ‘지식 베이스’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1만개 이상의 후보 물질 중 1개만이 최종 승인을 받는 상황에서 천문학적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 신약개발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해열진통제로 알려진 아스피린의 기전을 분석해 항암제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가 대표적인 예다. 기존 약물개발 방법에 비해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새로운 항암제 약물 하나를 얻게 되는 것이다. 남 교수는 “신약 후보 물질을 찾는 것을 시작으로 최종적으로 신약이 나오기까지 15년 정도 소요된다”며 임상시험 기간이 6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기초·탐색 연구에서 시간을 단축할 경우 신약개발 기간을 크게 앞당길 수 있는 만큼 제약회사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사업 참여 2년째에 불과하지만 지식베이스 자가 검증 알고리즘 및 약물표적 단백질 예측 연구성과를 거뒀다. 
 
▲인공지능 간호사 등장...요양인력 부족 시대의 대안
 
의료 인력의 부족 현상에도 AI가 해결사로 등장했다. 벤처기업 센스리社가 개발한 인공지능 간호사 ‘몰리(Molly)’가 그것이다. 이 회사는 AI 지원 방식의 원격의료 플랫폼을 지원하는 회사다. 몰리는 퇴원 후 집에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도와주는 서비스로 전 세계적인 고령화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몰리의 주요 역할은 원격진료의 일정관리와 혈압 측정 등인데 실제로 환자는 상대방이 소프트웨어라는 것을 알지만 가상 간호사에게 친근감을 느낀다고 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스마트폰을 통해 몰리 서비스에 접속하면 몰리는 “혈압 측정 시간입니다”라고 알려주고 환자는 제공된 장치로 혈압 측정을 통해 이전 데이터와 비교된 현재 상태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데이터는 병원으로 전송되며 결과에 문제가 있으면 의사가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 실제 병원의 간호사처럼 유사하게 환자를 대하게 된다. 일종의 원격의료인 셈이다.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는 이 같은 원격의료의 한 유형인 텔리메디신이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으며 의사는 화상회의를 통해 환자를 진찰하는 방식이 주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 세계 인공지능 시장 160조원...2017년에는 2백조원 돌파
구글, IBM 등 사활 거는 글로벌 기업들...연평균 14% 증가
 
 
세계 인공지능 시장 규모는 작년 기준으로 160조 원에 이르고 내년에는 200조 원 가까이 될 것으로 전망되며 연평균 14% 가량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 시장규모는 2018년에 약 7천억 원에 달하고 2013~2018년 사이 연평균성장률(CAGR)은 10%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P&S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CDSS 시장은 2022년까지 21.5%의 CAGR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CDSS 요구 분야는 약물 상호작용 감지, 약물 부작용 알림 등에서 질병 및 치료법 진단 등으로 점차 고도의 지능화 기능을 요구하는 쪽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글로벌 기업들은 앞 다퉈 AI 개발투자에 사활을 걸고 '플랫폼화' 시키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IBM이 10억불(약 1조 2천억 원)을 투자해 만든 왓슨이 대표적 예다. IBM은 최근 정부기관, 병원, 보험사, 제약사 등 8,500여 곳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트루벤 헬스 애널리틱스社를 26억 불(약 2.8조원)에 인수하며 2,500여 명의 인력도 추가 확보했다. 이 회사가 보유한 약 2.2억 명의 건강정보 데이터를 손에 넣은 셈이다. 이번 인수에 앞서 클라우드 기반 의료기록 분석업체인 익스플로리스(Explorys), 건강관리 소프트웨어업체 피텔(Phytel), 클라우드 의료영상업체 머지 헬스케어(Merge  Healthcare)社 등 건강정보와 관련된 업체 3곳을 총 40억 불(약  4.2조원)에 인수했다. 올 초에는 의료기기 업체 메드트로닉과 스마트폰 저혈당 예측 앱을 공동개발, 시제품도 공개했다. 
 
당뇨병 환자 600여 명을 대상으로 앱을 시행한 결과 저혈당 발생을 최대 3시간 전에 80%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었다. 올 3월에는 뉴욕게놈센터(NYGC)와 왓슨을 이용해 암 게놈 연구를 공동 수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암 환자 200명의 종양으로부터 DNA와 RNA의 서열을 분석해 암 유발 변이를 타겟으로 한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기업 인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회사에 구글을 빼놓을 수 없다. 구글은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데만 280억 달러(약 33조 원)를 쏟아 부었다. 이 중 7천억 원의 인수가를 제시해 품에 안은 회사가 바로 이세돌 9단과 대국을 벌인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社다. 이후 딥마인드는 옥스퍼드 대학 출신들이 창업해 인간의 언어를 연구하는 다크 블루랩社와 문자를 이해하는 비전팩토리를 각각 인수했다. 
 
앞서 구글은 사진을 분류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한 'DNN리서치'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는 인공지능계의 큰 손으로 불리는 캐나다 토론토대 제프리 힌튼 교수를 영입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현재 그는 구글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수된 회사들 대부분이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확실한 지원군이 나타나기 전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단 의미다. 딥마인드도 구글에 흡수되기 전엔 기술만 갖췄던 회사였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社는 AI 기반의 신약개발 위해 올해 3월 파마.AI(Pharma.AI) 사업부를 신설, 대형 제약업체 및 연구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특정 질환 예측 및 의약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는 일부 대기업의 전유물…아직은 걸음마 수준
 
국내 인공지능산업의 현실은 초라하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가 내놓은 ‘2015년 ICT기술조사’를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지능정보기술 관련 인적, 산업적 기반이 미약하고 지능정보기술 전반에서 선진국 대비 격차가 컸다. 기술력은 선진국보다 약 2.6년 뒤쳐져 있었다. 정부가 주도해 세운 인공지능 전문 연구기관도 없는 실정이다. 일부 대학에서 프로젝트를 연구 중이지만 인력과 예산이 모자라 인도 등에서 해외 연구진을 끌어올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인공지능 시장은 2013년 3.6조 원 정도로 세계 시장 규모의 1.5%에 불과하며 2017년에는 약 6.4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기준 인공지능 관련 기업은 24~64개로 추정되는데 이는 세계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 수와 비교할 때 약 2.5%~6.7% 수준이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지능형 로봇의 시장규모는 2010년 약 2천 712억 원에서 2014년 3천 385억 원으로 연평균 5.7% 성장했다. 이 역시 세계 성장 속도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수치다. 
 
국내에서는 삼성그룹과 두산그룹이 인공지능 육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시장의 저조한 성장보다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지 않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성전자가 2014년 이후 인공지능에 투자한 금액은 약 480억 원 정도로 추정되며 네이버는 2013년부터 5년간 인공지능 연구 개발에 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글이 기업 인수에만 약 33조 원을 투자, 중국 바이두는 약 3600억 원을 투자해 실리콘밸리에 딥러닝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국내 기업과 비교가 되지 않는 투자 규모를 보이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 신사업 격전지로 부상
 
미국, EU,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2013~2014년 뇌 연구를 시작, 기술·산업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뇌 연구를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유망 과학기술로 지목하며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범국가적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은 향후 10년간 총 30억 달러 규모가 투입되는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포함해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연간 30억 달러(3조 2,800억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미국립보건원(NIH)이 주도, 5개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인간 두뇌 작용연구와 포괄적인 뇌활동 지도 작성을 통한 첨단기술 개발을 목표로 두고 있다. 10년간 45억 달러 예산을 투입해 전반부 5년은 뇌 연구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고 다음 5년은 개발된 기술의 활용에 주력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도 2013년부터 10년간 10억 유로(1조 3,700억 원)를 투입해 25개국 135개 기관이 참여하는 인간 뇌 프로젝트(HBP)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뇌 연구와 이를 통합, 뇌의 작동 방식 이해를 가속화하기 위해 신경 과학과 의학연구에 첨단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연구목표이며 “인간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규명하고자 한다. 특히 프로젝트에서는 1,000억 개에 달하는 뇌 신경세포와 수천 배에 달하는 연결 구조를 슈퍼컴퓨터를 통해 통째로 구현함으로써 인간의 뇌를 슈퍼컴퓨터에서 그대로 재현한다는 계획이다. 영국 정부는 앨더 헤이 아동병원(Alder Hey Children's Hospital)을 인공지능 병원으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 왓슨을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의료비용을 절감시킨다는 방침이다. 
 
향후 환자 및 보호자를 대상으로 임상시술과 마취 등 의료 관련 사항과 주차, 식사 등 비의료 관련 사항 등 다양한 질문을 하고 데이터를 취합할 예정이다. 이후 분석을 실시, 환자의 병원 입원을 편안하게 하고 개인맞춤 서비스를 실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플랫폼은 환자의 입원 패턴을 모니터링하고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등 작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해외는 산업육성에 초점, 국내는 제도 검토 초기 단계
 
이처럼 예측 가능한 새 의료서비스에 대해 한국 정부도 재정적 지원과 안전관리 기준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뒤늦게 산업육성을 위해 나선 데다 지원안 규모도 작아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적용해 개발되는 의료기기의 안전관리 기본방안을 오는 10월까지 마련할 계획으로 산·학·연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협의체를 꾸려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협의체는 관리에 나설 의료기기의 범위와 분류 기준을 정한 뒤 어떤 방식으로 안정성을 평가할지, 어느 정도 수준을 안전하다고 판단할지 등 기준을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2023년까지 뇌연구 신흥강국으로 도약을 위한 특화 핵심 뇌기술 조기확보와 뇌연구 생태계 확충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뇌과학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2014년 기준 선진국 대비 72%인 기술수준을 2023년까지 90%로 끌어올리고 뇌기능지도를 구축, 세계시장에서 선점 가능한 제품 등 10건 이상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 기술을 범국가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능정보산업 발전 전략'을 제시, 혁신 유도 및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발전 전략에 따르면 민·관이 함께 기업형 연구소 형태의 지능정보기술 연구소를 상반기 내 설립하는 게 목표다. 국내 대기업 7곳(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KT, 네이버, 현대자동차, 한화생명보험)이 출자해 만들어지는 연구소는 판교테크노밸리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들은 30억 원씩 출자해 연구인력 50명 안팎의 연구소를 운영하며 조만간 법인 등록을 마칠 계획이다. 
 
정부는 대표 프로젝트 등 핵심 연구개발(R&D) 추진을 위한 연구비로 500억 원씩 3년간 총 1,5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연구소는 언어지능, 시각지능, 공간지능, 감성지능, 요약·창작지능 등 5개 분야 지능형 소프트웨어 개발을 집중 연구해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한다. 언어지능의 경우 2019년까지 이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는 것을 목표로 잡았으며 시각지능에선 인공지능의 이미지 인식 대회인 '이미지넷'에서 2019년 우승하는 게 목표다. 미래부의 이런 인공지능 육성전략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세계와 비교했을 때 국내 인공지능산업 육성에 들어가는 투자가 초라하기 때문이다. 구글이라는 한 기업만 봐도 기업인수에만 33조여 원을 투자했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新 규제 시스템 필요
 
보건의료산업 기술과 제품에 대한 규제 방식은 ‘허용’ 아니면 ‘금지’라는 이분법적 판단이다. 이에 대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신기술과 신산업의 경우 초기 단계에서는 위험(risk)과 편익(benfit)이 확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허용과 금지의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경우 정보의 내용이나 취급하는 기관 성격에 따라 위험과 편익이 다양하지만 규제방식은 ‘허용’ 아니면 ‘금지’ 뿐이라고 지적, 신산업에 대응 차원에서 ‘적응 규제(Adaptive regulation)’ 패러다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봤다. 처음에는 최소한의 규제들을 설정하고 필요에 따라 점진적인 규제를 검토하자는 의미다.
 
유럽의약품청(EMA)의 경우 맞춤형 허가(Adaptive pathways)라는 이름으로 임상개발초기에 시판허가를 부여하고 실제사용(real- life use)에서의 근거를 수집하면서 규제범위를 조절하는 방식을 2014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진흥원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결합, 의료와 비의료 경계영역의 제품과 서비스 등장 등 기존의 의료법, 약사법, 의료기기법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경계에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신산업 영역에 대해 새로운 법적 프레임을 만드는 것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산업 활성화 전략을 넘어 교육 정책과 고용 정책도 강조했다. 동력은 사람인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력을 적시에 공급하지도 못하는 경직된 교육체계로는 혁명을 주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공 지능을 연구하기 위해선 뇌과학, 물리학, 알고리즘 같은 기초 학문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인데 국내의 경우 이러한 인력들이 많지 않다.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창조적 인력을 키워내고 기존 인력을 새로운 산업 수요에 맞춰 재교육할 수 있는 유연한 교육체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건의료분야는 인력의 면허제도 등으로 인해 시장변화에 유연하게 인력 공급조절 및 재교육 전환 등이 어려운 분야다. 반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하에 인력의 공급 조절도 가능한 분야인 만큼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맞춰 인력 양성 및 재교육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규제 합리화 vs 규제 완화 위험 갑론을박
 
인공지능은 딱히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지능이란 게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어서 이를 인공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찬반양론도 교차하고 있는 상황이다. 찬성 측은 AI가 인간과 달리 판단 편향성이 없고 정보 제한성에도 구애 받지 않아 보다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 환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대 측은 환자들이 증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성격과 환경에 따라 다양하고 표현이 모호한 경우도 많아 인간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진단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삶의 질이나 생산성이 향상되기도 하지만 자동화 수준이 높아지게 되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되거나 특정 목적을 가진 집단에 악용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인공지능 기기에게 자율적 의사 결정 기능을 부여하게 되면 설계 시 고려하지 못했던 상황에 직면했을 때 통제 불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인명피해나 재산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 기업들은 전문 의료진이 참여하는 모니터링 및 검증 과정을 강화하면서 의료기관들과의 협업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의료 전문가들은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간 고유의 영역은 여전히 남을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훌륭한 의술을 가진 의사만이 좋은 의사가 아니라 소통과 환자에 대한 감성도 겸비해야 하는 게 의료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이유에서다.
 
▲‘오류’ 보인 인공지능, 아직 갈길 멀다
 
모든 인간은 실수를 반복한다. 하지만 용납되지 않는 실수가 있다. 인간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분야다. 카를로스 마틴스(Carlos Martins) 포르투갈 포르토대(University of Porto) 의과대학 교수는 “과도하고 부적절한 의료 검사야말로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진단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면서도 의료 검사 남용에 따른 문제를 방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기의 오작동으로 인한 인명피해 발생 시에는 책임 소재 또한 불분명해질 것이다. 인간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이 윤리적 판단을 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이를 판단한 인간 주체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또 인공지능이 윤리적 판단의 유일 주체가 아닌 그것을 보조하는 기능적 역할만을 담당하게 하도록 개발단계서부터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지금까지는 인공지능 기술이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의 자율성 부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설계한 사람의 통제 하에 있는 상황이지만 자율도가 증가하고 활용 범위가 넓어질 수 록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은 줄어들 것이다. 이에 대해 김윤정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은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내린 의사결정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등의 사회적 안전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수 있는 만큼 인공지능의 권한 부여 문제뿐 아니라 책임 소재에 대한 법률적 기반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인공지능이 제품화 되는 과정에서 설계 개발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구분을 통해 세심한 설계가 되도록 개발자에게도 책임을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라는 게 국내 인공지능 개발사의 의견이다. 연구개발을 위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개발자들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주고 기계의 윤리 모듈에 대한 승인과 인증 과정에 대한 법적·제도적 체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일반시민이나 전문가들로부터 광범위한 의견 수렴 및 정책적 제언이 가능하도록 위원회 등을 성립할 필요가 있으며 인공지능 기술의 악용 및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적 장치나 처벌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법률 및 제도 연구 등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리 이헌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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