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절로 불어오고 / 해 맑은 물소리는 종소리를 내며 향기로운 차 한 잔 우려내는 곳 / 자네는 이 맛을 아시겠는가? / 기쁘고 기쁨이 / 이보다 더 할까보나. 물안개... 골안개...추억안개 그리고 팔당호를 그리며 석양 노을 아름다운 운길산 수종사를 읊은 시다.

약사전 앞 석간수 그 물맛이 일품인데. 시(詩) 선(禪) 차(茶)가 하나 되는 다실 ‘삼정헌(三鼎軒)’은 차와 함께 동방제일의 전망 감상 포인트다.

그 옛날, 초의 선사, 다산정약용, 정조의 부마 홍현주, 추사 김정희의 발자취 따라 삼정헌의 통유리 시원한 창을 통해보는 산 아래 강풍경은 한 폭의 그림 동양화다.

작은 절은 아름답고, 소박하며, 절 마당엔 묵직한 위엄이 느껴진다. 소박한 돌계단, 아름다운 계곡길,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돌부처의 풍화작용이야기를 되새기며 바라만 보고 있어도 세상살이 갈등, 대립, 그리고 긴장이 풀어준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북, 법고 소리에 이어 목어, 운판, 범종 사물(四物)의 울림은 우리 인간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 일체 만물이 함께 깨어 불법을 따라 부처가 되자는 숭고한 뜻을 간직하고 있다. 청정한 독경소리는 세속번뇌를 사라지게 하고 스님은 부처가 된다고 하였다.

나뭇가지를 스쳐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소리, 스님들의 처연한 독경소리 그리고 바람에 일렁이는 처마 밑 풍경소리는 간간이 장단이 맞는 엇박자 가락이다. 특별한 관심, 바람도 없이 절집에 에워싸여 있는 풍경, 자연, 역사의 냄새 속에 나를 맡겨 바라보며 묵묵히 산풍경속에 파묻혀 녹아보자. 울울창창숲은 오탁에 찌든 속인의 마음을 씻어줄 것이다.

차는 처음 음료수의 일종이나 약용으로 등장하였다. 차차 기호식품화 되면서 취미생활과 연결되었고, 다시 일상생활의 도를 끽다(喫茶)와 관련지어 다도(茶道)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차의 연원은 전설의 시대에까지 소급되지만, 중국의 경우 4, 5세기경 양쯔강(揚子江)유역의 주민들이 애호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도의 성립은 8세기 중엽 육우(陸羽)가 ≪다경 茶經≫을 지은 때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다도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일본 등에 널리 유포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 말에는 차가 있었고, 9세기 전반경에 성행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는 귀족층을 중심으로 다도가 유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다소 쇠퇴하였으나 사원을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다.

초의는 그의 ≪동다송(東茶頌)≫에서 다도에 대하여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고 하였다. 즉, 그에 의하면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잘 우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를 끓일 때 물은 매우 중요하다. 물은 차의 체(體)이기 때문이다. 차인들은 물맛의 우열을 평하고는 하였는데 이를 품천(品泉)이라고 한다.

초의는 좋은 물의 여덟 가지 덕(德)으로, 가볍고, 맑고, 차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가 없고, 비위에 맞고, 탈이 없어야 할 것을 지적하면서, 급히 흐르는 물과 괴어 있는 물은 좋지 못하고, 맛도 냄새도 없는 것이 참으로 좋은 물이라고 하였다.

고려말의 이행(李行)도 품천을 잘하여 충주 달천(達川)의 물이 제일이고, 금강산에서 시작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가 그 다음이며,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가 세 번 째라고 평하였다.

신라시대의 다천(茶泉)으로는 사선(四仙)이 차를 달여 마셨다는 강릉 한송정의 다천과 효명(孝明)과 보천(寶川)이 차를 끓였다는 오대산 서대의 우통수(于筒水)가 유명하였다. 이들 우물은 현재까지도 마르지 않고 있다.

좋은 샘물은 그때그때 길어서 쓰면 좋지만, 샘물이 가까이에 없을 경우 물을 길어다 저장해서 쓴다. 물의 저장에는 독이 적당하고, 헝겊으로 입구를 덮는다. 오늘날의 도시인들은 대부분이 수돗물을 쓰는데, 이를 다시 정수시키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수도꼭지를 완전히 열어서 한참 동안 물을 흘려보낸 다음 받아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옛날에는 화로나 풍로에 불을 피우고 철병이나 차솥 등으로 물을 끓였지만, 오늘날은 커피포트 등으로 물을 끓인다. 좋은 차 맛을 내기 위하여서는 물을 잘 끓여야 하는데, 이 때문에 차인들은 화력의 상태[火候]나 물이 끓는 정도[湯候]를 정확히 구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는 한다.

물이 끓는 정도를 분간하는 탕변(湯辨)에는 형변(形辨)·성변(聲辨)·기변(氣辨) 등이 있다. 물거품이 일어나는 정도에 따라 구별하는 것이 형변이고, 물이 끓는 소리에 따른 구분이 성변이며, 김이 나는 정도에 따라 변별하는 것이 기변이다. 완전히 잘 끓은 물을 경숙(經熟), 그렇지 못하고 설 끓은 물을 맹탕(萌湯)이라고 한다.

말차(抹茶)와 전차(煎茶)에 따라 우려내는 방법이 다르다. 말차는 찻가루 약간을 찻숟가락으로 떠서 다완에 넣고 끓인 물을 부어 다선으로 격불(擊拂)하여 거품이 잘 일게 하여 마신다.

전차의 경우 다관에 차와 끓인 물을 넣고 차가 잘 우러났을 때 찻종에 따른다. 차의 품질에 따라 탕수(湯水)의 온도에 차이를 두는데, 대개 70℃∼90℃가 적당하다.

그리고 차를 넣는 투차(投茶)에는 차를 먼저 넣고 탕수를 붓는 하투(下投), 탕수를 반쯤 붓고 차를 넣은 뒤 다시 탕수를 더 붓는 중투(中投), 탕수를 먼저 붓고 그 위에 차를 넣는 상투(上投) 등의 방법이 있다.
차를 마실 때는 손님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겨 예로부터 혼자서 마시는 것을 신(神), 손님이 둘일 경우를 승(勝)이라고 하였다. 손님이 많은 경우는 시끄러워 아취가 적기 때문이다.

차는 색(色)·향(香)·미(味)의 세가지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 차의 색은 청취색(靑翠色)이 제일 좋고, 남백색(藍白色)은 다음이며, 그 밖의 황색 등은 품(品)에 들 수 없다고 한다.

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을 상(上), 씁쓰레한 것을 하(下)로 여긴다. 차의 향기는 독특한 것이기에 다른 향을 섞으면 좋지 않다. 차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이 좋다.

음다의 풍습이 성행한 곳은 주로 선가(禪家)였다. 이것은 졸음을 쫓아주는 차의 약리적 효과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차도의 정신과 선의 정신이 서로 계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다선일미설(茶禪一味說)이 생겨나게 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고려의 승려들은 차를 즐겼고, 차를 마시는 일상생활 속에서 진리를 터득하려 하였다. 지눌(知訥)이 “불법(佛法)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곳에 있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다선일미의 사상은 19세기 초의에 의하여 더욱 강조된 바 있다. 그는 한 잔의 차를 마시되 법희선열식(法喜禪悅食)해야 한다고 하였다.

김정희(金正喜)가 초의에게 써보낸 <명선 茗禪>이라는 작품은 차와 선이 한맛으로 통한다는 것을 강조해주고 있다. 또한, 이상적(李尙迪)이 찻잔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부처님의 수많은 화신(化身)으로 읊었던 것도 차를 통하여 선으로 나아갔던 것이고, 차를 마시면서 선열에 젖었던 예이다.

다도는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그 잘 끓인 물과 좋은 차를 간맞게 하여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취미생활이다. 찻잔을 씻고, 물을 길어 나르며, 목마를 때 마시는 일일 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떠나 도가 있지 않다. 선도 또한 평상심을 떠나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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