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팔달산(八達山)은 해발 128m의 아담한 산이다. ‘효원(孝源)의 고장’수원의 주산(主山)이다. 팔달산의 옛이름은 광교산(光敎山) 남쪽에 위치한 탑모양의 산이라 해서 남탑산(南塔山)이었고 오늘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 태조 때의 일이라 한다.

고려 말엽 남탑산 기슭에 이고라는 고명했던 한림학사가 살고 있었는데, 고려조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벼슬 제의도 거절하면서 낚시로 소일했던 강태공이었던가 보다. 왕조가 바뀌면서 조선 태조 이성계는 ‘경기우도 안염사’란 벼슬을 하사했으나, ‘남탑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면 사통팔달로 시야가 트이며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사는 것이 세상 제일의 즐거움’이라면서 벼슬까지도 사양하였다고 하니, 태조는 화공을 시켜 남탑산의 풍광을 그려 오게 하여 그림을 보고 감탄하면서 산 이름을 팔달산으로 지어 내렸다고 한다.

팔달(八達)은 ‘길이 팔방(八方)으로 통하여 있다’라는 뜻이고, 모든 일에 정통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
팔달산은 팔달산 공원이다. 화성 성곽과 연계하여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산이다. 한편 수원화성(水原華城) 성곽은 현재 위치보다 남쪽으로 약 8㎞ 떨어진 화산(花山) 아래가 중심이었다. 화성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 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경기 양주 매봉산에서 조선 최고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 아래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화성(華城)은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끼고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平山城)이다. 성벽은 서쪽의 팔달산 정상에서 길게 이어져 내려와 산세를 살려가며 쌓았는데 크게 타원형을 그리면서 도시 중심부를 감싸는 형태를 띠고 있다.

화성은 축성의 근본은 정조의 효심이다.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의 근절,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졌다. 또한 수도 한양의 남쪽 국방요새로서의 활용이었다. 세계 최초로 계획된 신도시의 성곽 건축물, 국내 최초의 계획 신도시 수원, 200년 전의 역사적 사업이었다.

수원화성(사적3호)은 국내 성곽 건축의 최고 걸작품이다. 200여 년의 풍화에 불구하고,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면서 원형이 보전되고 있다. 왕권회복과 함께 상업도시의 필요성은 물론 막강한 군사력, 든든한 경제력의 신도시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느끼던 시대적 사명도 중요했다.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 있는 길이 5.4km의 성곽이다. 1963년 사적 3호로 지정되었다. 199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수원화성은 한국성(城)의 구성 요소인 옹성, 성문, 암문, 산대, 체성, 치성, 적대, 포대, 봉수대 등을 모두 갖추어 한국 성곽 건축기술을 집대성했다고 평가 되고 있다.

조선 후기 정조 때인 1794년 착공하여 1976년 9월 10일에 준공되었다. 벽돌로 쌓는 측성공사에는 정약용이 고안한 거증기가 사용되었다. 화성은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실용적 구조로 되어있다.

화성에는 방어 시설개념의 4대문이 있다.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북문이며 정문이다. 보통 성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으나 화성은 한양에서 오시는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화강석 석축에 홍예문을 내면서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있다. 옹성, 적대가 설치되어 있다.

화성의 남문은 팔달문(八達門),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현재는 좌우의 성벽이 헐려 길이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 축대 위로 2층 누각이 세워져 높게 보인다. 중층문루 주위에 그 사방으로 낮은 담을 돌리고 바깥쪽으로 반달형 옹성, 좌우엔 적대 등 성문 방어 상 핵심 역할을 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팔달문의 옹성은 규모와 형태가 크게 돋보이며 도성의 문루처럼 우진각 형태의 지붕과 잡상 장식을 갖춘 문루로서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한다.

성의 동문은 창룡문(蒼龍門)이다. 음양오행설에서 푸를 ‘창’자가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6.25전쟁 시 크게 소실된 것을 1978년 복원하였다. 홍예의 크기는 장안문보다 크다. 각종 방어시설이 준수하다.

화서문(華西門)은 성의 서문이다. 홍예와 문루의 제도는 모두 창룡문과 같다. 수문(水門)으로 북수문(화홍문)과 남수문이 있다. 남수문은 현지동시장 근처 수원천에 있는데, 수원천 남쪽에 있다. 현재 미 복원상태에 있다. 화성의 북동쪽에 위치한 화홍문(봉수문)은 홍수를 대비하기 위하여 수원천 북쪽에 세워진 수문이다. 수원팔경 중 하나다.

장대와 노대는 군사 방어시설이다. 화성장대(서장대西將臺)는 팔달산 정상에선 망대로 사방 100리가 내려다보인다. 정조는 이 곳에 올라 군사훈련을 지켜보았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편액은 정조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장대 바로 옆엔 서노대(西弩臺)가 서있다. 서노대는 성 한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내를 쏘기 위하여 지은 정팔각형꼴의 전벽돌을 쌓아 놓았다.

동장대(연무대)와 동북노대는 화성 창룡문 근처에 있는 장대다. 장용영 군대의 훈련 장소로 쓰이면서 활쏘기도 할 수 있다. 공심돈(空心墩)에는 화살과 대포를 발사할 수 있는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이 있어 대포를 쏠때 총탄발사 위치를 알수 없게 설계되었다.

창룡문 근처에는 북동공심돈이 있다. 그 모양은 원형이다. 팔달문 근처에는 남공심동(南空心墩)이 있다. 동장대 근처에 북암문, 팔달산 서장대 근처에 서암문, 남공심돈 근처엔 남암문이 있다. 보통 암문과 달리 각루엔 화홍문 바로 옆에 동북각루가 있는 용연이란 연못 위에 있다. 화성의 시설물 중에서도 아름다워 방화수류정으로 부른다. 남수문 바로 옆에는 동남각루가 있다. 화양루로도 부르는 서남각루는 용도 끝에 있다. 화서문 옆에는 서북각루가 있다.

봉돈(烽墩)은 봉화를 올리는 시설로 다섯 개의 연기구멍이 있다. 포루(砲樓)는 치성 위에 누각을 세웠다. 동북포루, 동일포루, 동이포루, 북포루, 서포루 등이 있다. 치(雉)는 성을 돌출시킨 것으로 凸모양으로 만들었다. 치(雉)라는 이름은 ‘꿩’이란 뜻이다. 꿘은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 한다는 까닭에서 따온 이름이다. 서일치, 서이치, 서삼치, 동일치, 동이치, 동삼치 등이 있다. 적대(敵臺)는 팔달문과 장안문 양 옆에 각각 2개씩 있다. 북서적대, 북동적대, 남서적대, 남동적대가 있다.

화성 중심부엔 종각이 있어 여민각(輿民閣)이라 부르고 12월 31일 밤,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타종행사가 열린다.

화성을 지켜주는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성신사가 있고 효원의 고장의 효원의 종각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수원시가 1991년 만들었다. 팔달산 정상에서는 누구나 종을 칠 수 있다. 효심발원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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