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사람’속에 전남 보성(寶城)은 바다?산?호수의 삼경(三景)속에 어우러진 예(藝), 의(義), 차(茶) 때문에 삼보향(三寶鄕)으로 불리는 땅이고 청정해역과 비옥한 땅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과 보성사람들의 고집은 ‘고집 센 사람들이 지켜온 땅’이라 쓰고 있다.

선각자, 충신열사의 의향(義鄕), 보성소리의 예향(藝鄕), 생명연장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다향(茶鄕)의 삼보향에 보성사람의 특성 한 가지 고집이 추가 되어 사보향(四寶鄕)이 되었다.
보성의 동쪽에 장흥군, 화순군에 접해 있고 서쪽에는 순천시가 있고, 남으로 고흥군에 면해 있다.

남도 여행은 굽이굽이 붉은 황토고개 넘고, 오붓하고 한적한 마을의 좁은 들판을 지나서, 인심 좋은 강마을을 지나면, 자동차가 길을 벗어나가 버리는 곳 그곳은, 편안한 고향을 연상케 하는 소리의 고장, 보성에 이른다.

황금들판 보리는 추수를 앞두고 아직도 물레를 발로 돌리는 옹기장(甕器匠), 400년 전통의 10만 번 바느질 용문석(龍紋席), 넉넉한 벌교꼬막, 맛조개, 짱뚱어 등 땅과 물의 고마움, 사람과 역사의 소중함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풍요, 보수의 땅에 찾아가면 싱그러운 차밭이렁, 풍요로운 농어촌 산간마을과 넉넉한 갯벌에서 애절한 판소리가락과 싱그러운 남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어 좋은 곳이다.

꽃은 시나브로 피고 진다. 너나없이 바쁜 세월, 꽃을 눈여겨보지도 못하고, 가슴속 깊이 꽃향기도 들여 마시지 못하고 지냈다.

벌써 복사꽃, 사과꽃, 배꽃 모두 졌다. 벌써 봄꽃의 끝물, 산에는 철쭉이 피고 지며 백두대간을 북상한다.

남도의 봄은 향기로 익는다 했다. 라일락, 아가씨아 꽃향기 후각을 자극하나, 느낄 듯 말 듯 은은한 다(茶)향기로 봄이 익는다.

그래서 녹차(綠茶)향기 몸에 밴 연후에 보성관광을 즐기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5월은 햇차 따는 시기, 보성의 차는 먼저 눈으로 맛본다. 활성산 산능선 차밭구경, 봇재 넘는 18번 국도변, 대한다업, 몽중산다원, 봇재다원, 신옥로제다 등등 각 차의 특성, 향기,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 하는 시음장에서 남쪽 산기슭을 덮고 있는 다원을 눈으로 시음해 본다.

다산(茶山) 정약용(鄭若庸)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남녘 우리땅 텃밭의 생김새를 뱀과 같고, 소뿔과 같고, 둥근 가락지 같으며, 이지러진 달에 비유할 수 있고, 당겨진 화살 시위 같고, 찢어진 북과 같다고 표현했다. 남해안 산비탈 경작지 붉고 깊은 밭 그 모양은 남도의 대표적 풍광이다.

차잎 따는 계절에는 인근 마을 원정단의 한 잎, 한 잎 정성들여 차 따는 모습이 연녹색 차나무의 파도와 어울려 아름답고도 차의 향기로운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다원 높은 곳에는 카메라맨들이 카메라를 고정해 놓고, 차밭 사이로 구도와 사색 여행을 즐기는 표정에 자연스럽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관광객은 자연 속 인공설치 미술세트에서 주연이 된다.

전국 유명 관광지에서는 영화, 드라마, CF 촬영 장소였다는 선전탑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보성 차밭에서 삼나무숲은 또 다른 설치 마술이요, 영화세트장이다.

영화 ‘선물’속에서 배우 이정재와 이영애가 함께 걷던 삼나무숲길, ‘이동통신 CF’에서는 비구니와 수녀가 함께 자전거 타는 오솔길, 드라마 ‘온달 왕자들’의 신혼여행 촬영지였다.

매스미디어의 세상이다. TV화면 속 애국가의 배경, 잔잔한 물결 일 듯, 우리 손의 지문 같기도 하고 봇재 팔각정에서 보면, 거대한 초록뱀 수천마리가 산기슭을 덮어 꿈틀대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설치미술, 조형물 중 최고의 걸작이다. 물의 고장, 영천제의 호수물이
햇살을 받아 파문을 일으키며 반짝거릴 때는 더 환상적 영상을 연출한다.

차밭은 짙은 해무(海霧)속에 항시 젖어 있다. 진초록색 차밭이 초록으로 변하고, 잎이 돋아나면서 수확기에는 황금빛 초록색이 되니 황금축제를 연출한다.

다락밭, 층층 다락차밭, 눈이 부신 녹색, 녹색이 그리운 도시인들에겐 구도(求道)의 여행지가 된다.

싱그러운 초록세상 그곳엔 희망이 있다. 차밭 산등성이 아래 ‘녹차방’ 가는 숲길에는 ‘숲을 키우는 것은 희망을 키우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희망이다. 보성은 부드러운 바닷바람, 습한 바다안개 그래서 차재배 적지조건이라 했다. 천해의 조건이 새순이 돋아나는 노랑색에 가까운 연초록 차잎과 연초록 진초록이 합쳐 생명의 빛깔을 연출하고 있다.

‘다산각’에서 녹차 시음을 했다. 어제는 비가 많이 왔다. 어제 아침 빗속에서는 차밭을 볼 수 없어 다시 찾아 갔던 길이었다.

작은 현판 속에 짧은 시구(詩句)가 눈에 들어왔다.

‘낮에는 한 잔의 차요 / 밤에는 한 숨의 단잠이네 / 청산과 흰구름이 / 무생사를 이야기하네’
좋은 차 분류조건은 색(色), 향(香) 그리고 미(味)다. 차를 따는 시기, 발효정도로도 분류된다. 발효란 찻잎의 탄닌성분의 산화효소작용이다. 누런색과 검은 자색의 차는 독특한 향기와 맛의 원천이다. 홍차(紅茶)는 85%이상 발효시킨 것이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자스민차, 우롱차, 철관음은 20~60% 발효시킨 것이라 한다.

우리의 녹차는 발효제품이 아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차는 볶듯이 살짝 익히는 덖음 과정을 거친 정성이 듬뿍 들어 밴 제품이다.

차잎은 봄에 두 번, 여름에 한번, 가을에 한번 채취한다.

곡우(穀雨)전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찻잎은 우전(雨前)이라 하여 최상품, 잎이 채 펴지지 않은 어린순은 세작(細雀)이라 하여 최상품이다.

곡우에서 입하(立夏)전에 채취한 맏(첫)물차 첫 수확품이다. 5월 하순부터 6월 상순까지 따낸 차는 잎이 제대로 펴져 있고 중작(中雀)이요, 7월에는 세물차, 8월 하순부터 백로까지 따낸 차는 끝물차요, 대작(大雀) 막차가 된다. 차잎을 따는 시기, 환경, 만드는 방법, 보관법 그리고 우려내는 방법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같은 시기에 딴 찻잎이라도 재배위치에 따라 성분, 맛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가을차는 대중음료, 홍차, 막차의 재료라니 봄이 가기 전 부지런히 다녀보자.

맑은 날 새벽, 이슬이 덜 마를 때 딴 것이 으뜸이라니. 눈 마음을 편하게 하는 녹색의 장원에서 안개 걷히기 전 산책은 건강에 좋을 듯싶다.

우리나라 녹차 생산지는 보성, 하동 그리고 제주도다. 화개(花開)는 꽃피는 땅이다. 그곳 사람들은 벌써부터 음료와 상비약으로 찻잎을 다려 마셨다.

‘작설’을 경상도 억양이 섞이면 ‘잭살’이고, 타향사람들은 화개나무를 ‘개동백’이라 했고, 동백꽃처럼 꽃이 피지 않는 차나무는 동백과 식물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 사신으로 다녀왔던 김대렴이 우리나라에 들여왔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 한국차 시배지(始培地)는 쌍계사 산기슭, 차시배지 기념비가 서 있다.
월출산 자락에는 태평양 다원이 있다. 보성은 일제시대부터 차 재배지여서, 1939년 일본인 회사 경성화학(주)이 야산 30정보를 개간 인도산 베니호마레종 차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야생차나무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꽤 오랜 역사를 지녔다고 알게 된다.

8.15광복 이후 10여년 간 방치되었던 우리의 차밭은 1957년 대한다업이 보성차밭 사업단지의 기초를 조성하였다. 국내 녹차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게 된 보성차밭은 이 봄을 맞아 보성 다향제를 거행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차 마시는 예절을 다도(茶道)라 하나, 우리는 다례(茶禮)라 한다.

우리 다례의 핵심은 ‘오신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여 정성껏 대접하고 가시는 손님 뒷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배웅하는 정신’이라 하였다.

쓴맛도 아니요, 단맛도 아니다. 쓰고, 떫고, 시고, 짜고, 달콤한 맛 다섯 가지, 그것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동시에 맛보는 것이라 했으니...

차는 오감(五感)을 모두 이용해 마신다 했다. 눈으로 차의 색, 귀로는 물 끓는 소리를 듣고, 코로 향기를 맡으며, 혀로 맛을 보고, 손으로는 찻잔의 따스함을 느낀다.

차의 기본정신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데 있다. ‘차는 입이 아닌 마음으로 마신다.’

가장 먼저 딴 차가 가장 좋다. 첫물차, 새순, 여린 찻잎이 최고라는 뜻이겠고, 참새 혓바닥모양 가느다랗고 조그마한 작설차(雀舌茶)에 녹차밭 산책은 해뜨기 전후 최상이요, 안개 속에 잠긴 고즈넉한 차밭에 몸과 마음을 초록물, 빛 향속에 파묻혀 세상시름 녹이니 선인이 따로 없다.

웰빙, 다운시프터, 아침형 인간 그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건강 찾아 나선 운동 같은 것 아닌가.
녹차 이용한 독특한 먹거리, 녹차 된장, 고추장, 국수, 떡, 유과, 녹차 소?돼지고기 녹돈(綠豚)삼겹살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녹차 아이스크림까지.

봇재넘어 회천 율포해수욕장에는 해수?녹차 온천탕이 있어 온 몸에 녹차 맛보기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여행지 보성의 벌교를 무대로 <태백산맥>을 완성했다. 한국화가 백순실씨는 초의스님 동다송(東茶頌)을 소재로 15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물 끓여 차 마시는 것이 도(道)라면 향기, 색, 맛, 최고의 경지에 오른 ‘신명’이 예술에 가깝고, 문학, 그림, 음악에서 차(茶)는 창작의 원천이다.

소리의 고장, 강산제소리의 뿌리, 깊이도 은은하고 심오한 차의 향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차잎 따는 아낙의 구성진 가락의 진원도 찾아보자.

조선 말기 명창 박유전은 담장 너머로 익힌 가락에 삭힐대로 삭힌 한을 붙여 만든 창법이 서편제다. 보성은 서편제의 고향이다. 이날치, 정재근을 거쳐, 정재근의 조카 보성 출신 정응민은 동편제 서편제를 모두 섭렵 보령소리를 완성했다.

최천면 영천리 도강마을에는 명창 정응민의 유적지가 남아있다. 조상현, 조통달도 보성에서 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차잎 따는 아낙네의 노랫가락 구성지다. 봇재비탈 차밭의 풍광도 서편제 가락을 닮아 끊어질 듯 이어지며 노랫가락처럼 산자락을 넘어간다.

“활성산 가파른 산허리, 아낙네들의 차잎 따는 풍경, 너무 이르면 향이 없고 너무 늦게 따면 맛이 탁하다니, 한 잎 한 잎 차를 따는 손길이 차를 끓이는 것만큼이나 정성스럽다.”는 말에는 다도의 기본정신이 베어 있다.

시인 김혜숙씨의 <차를 권하며>를 옮겨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 한 잔의 차를 달일 수 있는 여자는 행복하다/
 첫 햇살이 들어와 / 마루 끝에서 어른대는 청명한 아침 /
 무쇠 주전자 속에서 / 낮은 음석으로 끓고 있는 물소리와 /
 반짝이는 다기 부딪는 소리를 /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
 여자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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