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 지구에 처음 나타난 것은 고생대 데본기인 약 3억 5천만 년 전이다. 스스로 진화를 거듭해 현재 확인된 곤충 종류만 80만 종에 이른다. 이는 지구에서 살고 있는 동물 중 약 70%를 차지하는 수다. 이런 곤충의 놀라운 생명력과 번식력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으로 때론 경외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작고 더러운 곤충? 인류보다 오래된 지구의 주인이었다. 메뚜기떼 습격으로 식량 빼앗긴 마을, 대체 식량은 메뚜기? 중국 당나라 때부터 성행하던 귀뚜라미 씨름 현장, 체르노빌 오염으로 기형이 된 곤충, 곤충을 통해 본 요지경 세상이야기를 풀어낸 <인섹토피디아>의 저자 휴래플스는 “인간의 공격은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친구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벌레 퇴치? 함께 살아야 한다.”

풍요와 결실의 계절, 가을에 가장 바쁜 곤충은 메뚜기다. 황금빛 물결이 넘실대는 가을 논은 무척 아름답다. 농부들은 일년 내내 정성들여 기른 벼를 수확한다. 바쁜 농부들만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곤충은 메뚜기다. 예전의 가을 들판에서 산업공업단지로 바뀐 지금은 메뚜기 개체수도 많이 줄어서 직접 보기 어렵다. 1960~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농약을 많이 사용하면서 메뚜기는 멸종위기에 놓인 때도 있었다.

메뚜기는 다른 곤충들처럼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나뉘며, 세 쌍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세 쌍의 다리는 모두 가슴에 붙어 있다. 앞날개와 뒷날개를 한 쌍씩 가지고 있다. 날개와 비교하면 몸이 큰 편이어서 비행거리는 짧다. 짧은 거리는 다리로 점프하여 움직인다. 메뚜기는 자기 몸길이의 20~30배 거리를 뛸 수 있어 점프실력이 뛰어나다. 다리 힘만으로 자기 몸길이의 20~30배 거리를 뛸 수 있는 점프 실력보유자다. 그 점프능력을 사람으로 보면 30~60m 정도의 거리를 한번에 점프실력으로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 점프 실력소유자다.

메뚜기의 점프 비결은 뒷다리(넓적다리)의 커다란 근육과 발목의 탄력에 있다. 메뚜기의 뒷다리 근육은 몸과 비교하면 매우 크다. 메뚜기는 점프할 때 뒷다리 근육을 수축시키면서 뒷다리의 마지막 마디를 뒤쪽으로 튕기는데, 이때 생기는 강력한 반작용으로 멀리까지 점프할 수 있다.

벼룩은 메뚜기보다 점프를 더 잘한다. 자기 몸길이의 100배 이상 뛰어오를 수 있다. 메뚜기는 크고 무거운 몸 때문에 쉽게 지쳐 연속점프를 하지 못한다. 벼룩은 72시간 동안 한 시간에 600회씩 쉬지 않고 점프할 수 있다.

메뚜기가 가을에 바빠지는 이유가 궁금하다. 메뚜기는 성체(成體?어른벌레)의 모습으로 겨울을 지내지 못한다. 가을에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자손을 낳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땅속에 꼬리를 꽂고 알을 낳는다. 그것은 추위에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함인데 다음해(이듬해) 5~7월경 부화한다.

메뚜기는 불완전 변태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다. 나비나 벌 등은 성체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알에서 부화한다. 메뚜기는 크기만 아주 작을 뿐 모습은 성체와 비슷하다. 나비나 벌의 애벌레가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체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것과 달리, 메뚜기는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어 그 모습 그대로 성장한다. 메뚜기와 같이 성장하는 과정을 생물학에서는 ‘불완전 변태’라 하고 나비나 벌처럼 모습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완전 변태’라 한다.

우리가 메뚜기라고 부르는 건 다양한 메뚜기 종류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메뚜기와 구분하여 생각하는 귀뚜라미, 곱등이, 땅강아지 등도 분류학상 ‘메뚜기목(目)’에 속하기 때문에 사실은 모두 메뚜기라 할 수 있다. 그중 벼메뚜기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메뚜기’라고 하면 벼메뚜기를 의미하게 된 것 뿐이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곤충을 미래 인류의 주요식량으로 꼽고 있다. 메뚜기는 오래전부터 인류의 중요한 단백질 원이었다. 메뚜기를 비롯한 많은 곤충은 육류보다 더 질 좋은 단백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동물성 지방에 없는 불포화지방이 풍부하고,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이 들어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곤충을 식용으로 즐기고 있다. 식용곤충의 인기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 겉모습에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 곤충을 갈아 넣은 음식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우리도 누에 애벌레인 번데기를 즐겨 먹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새우도 그 모양만 보아서는 메뚜기보다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많이 먹고 즐기지 않는가. 곤충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할 수 있다면 메뚜기도 새우처럼 우리에게 인기 있는 식품이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이제 곤충경제학이란 용어도 회자된다. 소나 돼지를 사육하려면 사료비, 배설물처리, 환경파괴 등 문제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번식력 좋은 곤충의 그 서식환경 마련에 특별관리가 그리 크지 않다. 개체수를 급속히 증식하는 이점이 크다. 예부터 하늘 뒤덮은 재앙, 메뚜기떼 출현을 우리 식량 미래와 연관하여 옛일을 상기해 보자.

‘남쪽 하늘에 검은 구름처럼 지형선 위에 걸려있더니, 이윽고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그들이 내려앉은 곳은 졸지에 잎사귀 하나 볼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해다.’

193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의 소설 <대지>에 메뚜기떼 승격을 묘사한 내용의 일부다. 중국 농촌을 습격한 메뚜기떼 모습, 상상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었다.

2011년 호주에서는 몸길이 8cm, 괴물메뚜기떼가 농장을 덮쳐 목초지를 초토화했다. 2014년 8월 아프리카 남부 마다가스칼섬에 메뚜기떼가 출몰하여 세 번째 피해를 입히며 하루 평균 30~40km 이동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 한 무리가 무려 10억 마리, 하루 자기 몸무게의 두 배에 달하는 농작물을 먹어치웠다.
구약성경 출애급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달라는 모세의 부탁을 이집트 왕이 거절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느님은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린다. 그중 여덟 번째 재앙이 메뚜기떼의 습격이다.

예부터 메뚜기떼의 습격은 가뭄과 홍수가 동시에 겹치고, 농작물 피해가 극심하여 기근으로 갖은 고통을 겪었다. 고대사회엔 도적떼가 들끓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들은 재난극복을 위해 고행을 했다. 당태종은 메뚜기떼가 수도 장안을 뒤덮은 경우 ‘곡식 대신 차라리 내 심장을 갈가먹으라’고 메뚜기를 산채로 삼키었다.

메뚜기떼를 쫓아내는 신(神)도 모셨다. 우리나라도 그 옛날 메뚜기떼 습격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여덟 번, 백제가 다섯 번, 신라가 열아홉 번의 메뚜기떼 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571년 고구려 평원왕은 메뚜기떼 출현으로 궁궐공사를 중지시켰으며, 720년 신라 성덕왕은 메뚜기떼 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당하자 정부 고위직 인사를 해임시켰다.

옛날 임금님들은 자신에게 덕(德)이 없기 때문에 메뚜기떼가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고려 현종은 음식을 줄이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였다. 조선 효종은 메뚜기떼 피해가 극심해지자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니 자신을 꾸짖어 달라는 글을 신하들에게 보냈다. 조선 세종임금은 메뚜기떼를 소탕하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켰다.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에 메뚜기떼 발생의 예방법을 기록했다.

‘농작물 심을 때 메뚜기가 먹지 않는 작물을 함께 심고, 겨울철에 메뚜기알을 찾아 없애고, 메뚜기떼 방지용으로 울긋불긋한 천을 맨 긴 장대를 꽂아 메뚜기떼가 논밭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바야흐로 세계는 곤충식품 개발 경쟁중이다. 곤충을 ‘작은 가축(Little Cattle)’이라 부르는 이유다.  곤충의 식량 연구는 저개발국가의 기아해결 곤충연구사업이었던 것이 이제는 선진화 국가들의 경쟁 산업이 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 곤충산업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다. 정부는 2020년엔 곤충 식품산업 시장규모를 연 2000억원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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