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철도 훨씬 기울어진 늦가을 강원도 양구 두타연을 찾아 길을 나섰다. 우리 일행 팔순 늙은이 다섯 사람은 아우성 심박사를 운장삼아 호사스러운 길을 떠났다. 터널 많은 경춘가도를 벗어나 양구땅 초입 배후령 긴 터널을 달리고 있었다.

문득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차창 밖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대학교수 정년 후 지방에서 한 병원의 병원장을 지나면서 거치상스런 자취를 하면서 한국경제신문의 ‘한경에세이’를 쓰던 시절이 생각나서 4개의 짧은 글들 중에서 ‘배후령’을 위시하여 늙은이 자취생이 느낀 ‘산행에서 만난 리더들’, ‘전기다리미 개미집’ 그리고 대전의 계룡산 줄기요 제2 국립묘지가 있는 ‘갑하산’이야기를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03년 5월부터 6월 현충일까지 쓴 컬럼들이었지만 사회생활 역정이다. ‘배후령’, ‘산행에서 만난 리더들’, ‘전기다리미 개미집’ 그리고 ‘갑하산’을 다시 떠올리며 원고지를 채운다.

<배후령>
오음리고개 배후령(600m) 정상에 섰다. 배후령은 춘천과 양구를 가르는 마루금이다. 파월장병 제10제대. 35년 전 일이 생각난다. 꼬불꼬불 먼지가 날리던 고갯길은 험하고, 정비도 되지 않았던 길이었다. 그런 고개에 이제 넓은 주차장이 들어서고 38선 비석이 서있고, 46번 도로는 간선도로가 되어 있다. 우리의 발전상이다.

TV화면 속 다산부대. 이라크로 떠나는 장병들의 늠름하고 자신에 찬 모습이 나온다. 여군소령과 귀여운 아들의 뽀뽀장면이 지난 날 춘천역 플랫폼에 홀로 떨어져 손을 흔들고 서있던 아내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국산 군수품으로 무장하고 떠나는 파병장병들의 모습을 보면서 파월 당시를 돌이켜 보게 된다. 우리 김치통조림은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가. 미군 PX를 둘러보면서 선풍기 카메라 보온병에 호기심을 가지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던가.

파월교육 중 배웠던 마오쩌뚱 16자전법(敵進我退, 敵止我搖(攻), 敵疲我打, 聲東擊西), 칭기즈칸의 전략전술(突然襲擊, 速戰速決, 以戰養戰, 以敵征敵)을 경영일선에 많이 애용했다. “인민(人民)은 물이요, 게릴라는 물고기다.” 한국군은 “물과 물고기를 분리해야 된다.”는 전략을 쓰지 않았던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기업인들은 군작전요무령까지도 다시 꼼꼼히 읽으며 전쟁 경험을 기업에 접목하려 노력했다.

얼마전 미국 육군 전 참모총장 고든R 설리번 장군의 ‘장군의 경영학’을 흥미롭게 읽었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조직 미 육군, 90년대 조직개혁과 축적된 경영 노하우로 21세기 신속군을 창설하여 군에 정보혁명을 일으켰다. 이라크전은 ‘전자적 전격전’이다. 지도부를 직접 공격하여 전쟁수행 잠재력의 신경을 끊는 전국적 마비전술이다.

옛날 동양의 전쟁은 적장을 제거하는 전술이었다. 반면 서양의 십자군 전쟁에서는 적의 병력을 무찔러 전투력을 약화시키고, 왕의 항복을 유도하는 전술이었다. 동세서점(東勢西漸)이라 이제는 손자병법을 서양에서 쓰는 것 아닌가.

미국을 21세기판 몽골제국이라 부른 아랍학자도 있지만 미국의 우주전력 ISR(Intelligence Surveillance Reconnaissance)운영은 정보작전과 함께 고도의 심리전법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도 했다.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전술을 익히는 것이 월남파병 경험 이상의 무엇을 얻을 수 있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갑하산(甲下山)
갑하산(496.2m) 정상에 서있었다. 예로부터 명당자리로 전해오더니 국립현충원이 세워졌다. 선조들은 1년 24절기 중, 손이 없다는 청명(淸明) 한식(寒食)에는 벌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芒種)에는 제사를 지냈다. 고려 헌종 5년 6월 6일 조정에서 장병의 뼈를 집으로 봉송하여 제사를 지냈다는 문헌기록을 근거로 1956년 망종인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했다.

1950년 필자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전쟁 중 유명을 달리하셨던 선생님들의 위령제 제문을 눈물을 뚝뚝 떨구시며 읽어주시던 국어선생님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나는 광주산골을 헤매이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는 부제가 붙은 애국시로 뜨거운 조국애를 읊었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나온다...’

훗날 시인은 비참했던 전쟁의 비극, 적 치하 공포의 나날을 후기(後記)로 남겼다. ‘그 때 나는 남루한 치맛자락을 끌며 석달 째 어느 초가 지붕 밑으로 나를 숨기기도 하고, 수수밭 속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면서 기구한 목숨을 끌고 다녔다. 인가(人家)도 무서웠고,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내무서원과 마주치는 것도 두려웠다. 나지막한 산등성이로 기어올라 사흘째 밤을 새던 날 새벽, 바위에 몸을 기대고 쓰러졌던 내 뺨에선 피가 흘렀다. (중략) 마지막 서로의 최후 결전이었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비목(碑木)은 국민가곡이 되었다.

강원 철원 전투를 상기하며 평화의 댐 비목공원에서는 올해도 비목문화제가 열린다. 이 조국산하는 녹색혁명에 성공하였고 벼심기, 논농사 힘들어 망종(芒種)을 망종(忘終)이라 한탄하던 농사일은 기계화되었다. 지난 50년 동안 이 나라는 농경시대를 거쳐 산업화사회, 정보화사회로 치달으며 발전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나 정신적 계발은 뒤따르지 못했다. 잊고 살았던 아쉬운 날은 한두 가지가 아닐 듯싶다.

순국선열에 대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며, 거안사위(居安思危) 잊지 말자.

순국선열들이시여 명복을 빕니다.

<전기다리미 개미집>
숲의 주인공은 나무다. 나무는 공장장이요, 사장님이다. 숲의 질서는 인간세계의 질서를 빼어 닮았다.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문에는 문풍지를 바르고, 흙벽은 자연 친화적이었고, 천장에서는 쥐들이 체조를 하는 것이 초가집의 풍경이 아니었던가.

어느날 아파트 주방 싱크대에는 눈에 겨우 보일 듯 작은 개미들이 줄을 이었다. 약을 뿌릴까. 그런데 며칠 후에는 개미를 찾을 길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 와이셔츠를 다리미질 하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물뿌리개를 누르고, 스팀코크를 눌러 더운 수증기를 뿜어 다리미질을 하고 있었는데 흰 와이셔츠에는 검은 티가 수없이 내려앉았다. 개미들이 화상을 입고 모두 죽어 나자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개미 서식지에 시멘트를 치덕치덕 바르고, 자연 환경을 손상해서 한치 여유 없이 근대 건축기술로 아파트를 지어 놓았으니 개미들이 살 곳이 어디 있겠는가. 집안을 돌아다니다 전기다리미 스팀구멍을 찾아 그들 속성대로 피난살이 했었는데 그나마 뜨거운 스팀 세례를 퍼부었으니...

근대 건축기술로 방풍, 방음장치를 하면서 까칠까칠하고 따가운 그라스울로 벽과 천장을 처리하면서 쥐들이 얼씬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주거환경도 좋아지고 전염병도 없어졌다. 겨울 산행 중 산짐승의 발자국은 등산객이 즐겨 다니는 곳과 일치하니 놀라운 일이다.

어두운 아스팔트 산간도로에 가끔 고라니의 주검을 본다. 그들도 다니는 길이 있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면 신작로를 가로질러 이동하게 되는데 봄철 길에는 널부러진 개구리의 시체를 많이 볼 수 있다. 자연 생태계를 고려하여 길을 닦고 동물보호를 우선해야 되지 않을까.

한강 밤섬은 철새의 낙원이다. 그러나 한강 모래 채취는 먹이 사냥터를 잃게 만들어 잠은 밤섬에서 아침식사는 멀리 다른 곳에서 하고 있는 실태는 북한 땅 연백평야에서 밤을 샌 기러기들이 서해상 군사분계선을 넘어 강화교동도로 날아와 먹이를 먹고 가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지리산 반달곰 소식은 낭보였다. 반달곰 추적 발신기 추적에서는 등산객의 함성이 곰을 놀라 뛰게 만들었다니 위험신호 ‘야호’는 호연지기 발산에는 쓰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산행에서 만난 리더들>
리더의 유형에는 권위주의형과 타협형, 변화대응형이 있다.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산행에서는 변화대응형 리더십이 기본이다. 간부 직원들과 힘들게 산을 오르던 어느 사장은 “직원들이 축구나 하게 할걸 공연히 등산을 왔다.”며 후회하고 있었다.

지난해 월드컵대회 이후 히딩크의 리더십이 화제가 됐었다. 사장이 직원들이 축구를 하도록 장을 마련해주고 구경이나 한다거나 심판이나 본다는 생각은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축구 심판만 해도 90분 동안 선수들과 같이 뛰며 게임을 진행한다.

산행 중 직원들이 앞서가는 것을 저지하고, 힘이 부치면 “간식 시단이다” “5분간 휴식” “사진찍고 가자”고 하는 사장을 봤다.

신세대들은 이런 상사를 멍부형(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라고 부를 게다. “스트라이크를 던져라” “볼을 던져라” “번트를 대라”며 감독이 하나하나 지시하는 야구식 경영같은 권위주의형 리더십은 더 이상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장(將)’이 죽으면 지듯이 한 사람이 독단하는 장기(將棋)식 경영은 바둑 전사들(19X9=361명)이 끝까지 제몫을 다하는 바둑식 경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산악회의 산행가이드들 중에는 등산 초보자, 중급자, 고급자를 구분해 안전산행을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처지고 있지만 능력껏 따라가는 등산객을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이도 있다. 어떤 산악회장은 버스에 눌러 앉아 등산팀이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길 기다리거나,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술에 취해 고성방가하는 리더도 있다.

래프팅의 계절이 돌아왔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바위와 소용돌이 같은 위험물들은 정보통신을 이용한 광속경제시대 경영환경과 다를 바 없다. 래프팅은 용기, 인내심, 담력, 협동심이 필수적이다. 래프팅을 끝낸 뒤의 성취감과 해방감, 위기탈출의 묘미는 성공경영의 희열과 같지 않을까. 경영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변화대응형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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