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마주치다> 옛 시와 옛 그림, 그리고 꽃이란 부재가 붙은 기태완씨의 책속엔 ‘연경에서 온 기이한 꽃’ 천상을 꿈꾸는 능소화 이야기가 있다.

“어린시절 집 마당 화단에 붉은 벽돌로 쌓은 높은 굴뚝이 있었는데 수십 년 묵은 능소화가 그 네모난 굴뚝을 담쟁이처럼 뒤덮고 있었고 초여름 더위가 시작되면 긴 이파리 사이사이마다 주황색 꽃들이 주렁주렁 작은 풍경처럼 매달렸다. 따가운 여름 햇살 속에 눈부신 주황색 꽃들! 바람이 불면 수많은 풍경소리가 들리는듯...”

“그러나 비바람이라도 몰아치면 화단과 마당에는 능소화의 통꽃들이 주황색 융단을 깔았다. 그 낙화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처연한 그 모습은 동백꽃이나 석류꽃의 낙화에 못지않았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연대는 잘 모른다. 능소화(凌宵花)의 능(凌)은 능가할 능 또는 업신여길 ‘능(凌)’자다. ‘소(宵)’자는 ‘하늘소(宵)’자다. 그 옛날 능소화는 하늘같은 양반을 능가하고 업신여길 것을 염려한 상민들은 심지 못하게 했던 꽃이다. 그래서 ‘양반꽃’이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다. 영어 이름은 Chinese trumpet creeper 또는 Chinese trumpet vine으로 부른다.

능소화가 처음 등장한 동아시아 문헌은 <시경>이다. <시경>의 시인이 능소화를 나라의 은혜에 의지하여 사는 백성으로 보았다. 능소화는 글자 그대로 하늘을 능가할 정도로 높이 자라는 꽃이란 뜻이다. 구름을 뚫고 솟은 능소화는 속세를 떠나 신선세계로 가려는 뜻을 지닌 듯하다. 또 해를 향하여 솟아난 모습은 해를 받들려는 충심을 지녔다. 세한삼우(歲寒三友) 가운데 하나인 푸른 솔에 의탁하여 곧장 평지에서 천길 높이로 솟았다. 능소화는 고상한 친우의 도움으로 천상으로 오를 수 있었던 꽃이다.

능소화란 글자 그대로 하늘을 능가할 정도로 높이 자라는 꽃이란 뜻이다. 능소화는 등나무와 같은 목본덩굴식물이라서 스스로 높이 자랄 수는 없고, 높이 자라려면 반드시 담장이나 높은 나무와 같은 의지할 수 있는 지탱물이 있어야 한다. 아파트 단지 앞 도로변에는 주택가의 자동차 소음을 막기 위한 구조물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다.

마을버스 정류장과 도로변에는 이팝나무가 두 줄로 늘어서 있다. 방음벽에는 줄사철나무, 마삭줄, 미국 담쟁이덩굴 같은 덩굴식물을 식재해 놓았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능소화와 붉은 인동 그리고 담쟁이덩굴을 심어 놓았다. 이제는 출근길에 능소화 줄기는 벌써 낫자루만큼 굵어져 주황색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 꽃길을 걷게 되었다.

전철역을 향하여 2~3분 걸어가면 달맞이 근린공원 절개지를 만난다. 절개지의 암석벽면을 덮기 위한 등나무 식재지를 따라가는 길에는 제멋대로 자란 등나무가 암석벽면을 이탈하여, 축대 위 생 울타리로 심어놓은 개나리와 뒤범벅이 되어 있는 길을 걸어가면 다시 다른 아파트 단지의 교통소음 방지벽을 만난다. 능소화는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녹색벽을 만들어 담장 녹화 사업을 벌이려던 담쟁이들이 해를 거듭하면서 애석하게도 시름시름 시들어 가고도 있다.

지금 우리는 조금만 나가면 터널 입구 진입로를 비롯하여 절개지 옹벽, 등 도로공사나 지방 자치단체 환경팀들의 교통소음공해 방지를 위한 덩굴식물 식재를 자주 볼 수 있다. 한때 무성했던 담쟁이는 해를 거듭하면서 시들어가고 있다. 담쟁이가 뿌리를 내릴 공간이 부족하고 콘크리트벽 주위에는 흙이 적은 관계로 토양이 산성화되면서 식물성장을 방해한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여러 가지 덩굴식물을 후보에 올렸지만 송악, 마삭줄, 줄사철나무는 건조하고 찬 공기에 노출되면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꽃이 화려한 것으로 심자는 의견을 종합해서 능소화와 붉은 인동이 선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줄사철나무, 마삭줄 같은 상록성 덩굴식물이 잎사귀 색은 약간 갈색을 띠지만 그대로 살아있다. 능소화는 중국 남부가 원산인 낙엽덩굴성 목본식물이다. 줄기에 공기뿌리(기근ㆍ氣根)를 갖고 있다.

나무줄기나 바위에 붙어 기어오른다. 능소화는 오래동안 재배해왔던 화초여서 이름도 많다. 지화지, 수태화, 등라화, 능거북, 귀목, 능소, 등다초, 추라, 상수오공, 쇄골풍 등으로 불리고 그 학명은 Campsis grandiflora이다.

능소화의 마주 돋아난 잎은 홀수 깃털꼴겹잎이다. 7~9장의 작은 잎(소엽)이 한 장의 잎을 이룬다. 맨 끝에 달린 잎은 크고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있다. 7~8월에 가지 끝에서 나팔모양의 주황색 꽃이 주저리를 이룬다. 꽃은 하루 동안만 피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새로운 꽃이 피면서 반복한다.

잘 익은 살구빛으로 벌어진 꽃잎은 끝이 다섯 장으로 얇게 갈라져 있어 끝은 찢어진 나팔모양이다. 능소화는 통꽃으로 떨어진다. 싱싱한 꽃이 처절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이 떨어진다.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했듯이 능소화는 떠날 때가 되지 않아도 떨어져 가꾸는 사람을 애처롭게 하는 꽃이다. 그 모습이 처연하다. 처절하다. 허망하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작품의 소재로 즐겨 다루었던 관상식물이 능소화다. 원산지에서는 시냇가의 나무 숲속 가장자리나 바위 절벽의 큰나무 등걸을 기어오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담장에 붙여 가꾸거나 고사목에 줄기를 붙여 가꾼다. 주로 관상용이다. 약용으로 쓰기 위해 심은 곳은 아직 보지 못했다. 능소화의 생육조건은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므로 우리나라 중남부 지방에서 재배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서울 지방의 경우 겨울에 세찬 바람이 부는 곳에 심으면 가지가 말라죽기 쉽다. 동사를 막기 위해 줄기 아래쪽을 짚으로 감싸주거나 찬바람을 막아줄 필요가 있다. 장마철에 줄기를 잘라 모래에 꽂고 비닐을 덮어 습도를 유지하면 뿌리가 자라고 싹이 돋아난다. 꺾꽂이를 통해 번식한 어린 포기는 겨울에 말라죽기 쉬우므로 땅에 묻어 월동시키는 것이 안전하다.

지금 클리닉 정원에는 능소화, 자귀나무, 박태기, 석류나무, 목련이 서있다. 능소화와 자귀나무 그리고 목백일홍과의 만남을 기억해 본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고 전국에 콘도미니엄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시절이다.

고속도로와 남쪽지방에서 보았던 나무들은 신기했다. 자귀나무와 능소화를 심었던 것도 그때였다. 지구온난화현상이라 하지만 지난해 한강공원 응봉역 콘크리트 제방 공사 후 심은 팔뚝굵기 능소화는 겨울을 보내고 금년 7월에 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능소화도 중부 이북지방에서 기를 수 있는 나무로 생각된다.

능소화는 독성을 가진 독초식물로 분류한다. 맹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정도의 독성을 갖고 있어서 잎과 꽃을 말려 약으로 쓴다. 활짝 핀 꽃을 햇볕에 대보면 쌉쌀하고 신맛을 느낄 수 있다. 능소화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실명한다는 말이 있다. 전문가들이 문헌을 조하새 보아도 독성이 강하다는 연구결과를 접할 수는 없었다 한다.

특히 능소화의 성분에 대해서는 아직 규명된 것이 없고 확인할 길이 없다. 약재라 하지만 독성이 있으므로 함부로 쓰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민간약으로 쓸 때도 반드시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서울 시내 곳곳에는 능소화 꽃이 만발하고 있다. 금화터널 진입부는 물론 능소화 활짝 핀 서울의 도로변은 풍요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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