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은 조선시대 때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흥성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등 귀족들의 별실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그들 귀족들은 경복궁 근처에 사저를 갖고 있으면서 때때로 이곳에 와서 백악동천(白岳洞天:경치가 좋은 백악산이란 뜻으로 백악은 북악의 다른 이름이다)을 즐기거나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부암동 주민센터 앞으로 가면 부암동의 변화를 첫눈에 눈치챌 수 있다. 예쁜 카페가 들어섰는가 하면 분식집이 있던 자리는 새로 인테리어 중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부암동은 아직도 적막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메마른 도심 속에서 시간이 멈춘 곳으로, 주위에 울창한 숲, 계곡, 미술관이 들어서 있고, 작업실과 갤러리와 하우스콘서트까지 하나 둘씩 늘어나는 곳, 항간에는 왜 하필 부암동이냐고 의문표를 달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삶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곳으로 이제는 도시 속 전원생활공간이 되었다.

서울 부암동 백사실계곡을 찾아간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서 자하문 터널을 빠져나가면 부암동이다. 흔히 자하문 밖이라고도 불렀다. 세검정(洗劍亭)쪽으로 내려가는 길가에 높이 2m의 구멍이 숭숭 뚫린 부침바위(붙임바위?付岩)가 있었다. 부암동의 유래바위다.

바위에 돌을 붙이면 옥동자를 얻는다는 전설이 있어 수많은 여인들이 정성껏 돌을 붙여놓고 절을 하였다. 1960년대 중반 자하문 길이 확장되면서 돌을 치워버렸다 한다. Portal site Daum의 ‘구룡초부’란 bloc을 쓰는 분은 많은 글을 올리고 있는데 부침바위에 대해서도 새로운 설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시대(眞景山水時代)를 연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은 인왕산 아래 출생하였고 인왕산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인왕산 그림 제일 끝 봉우리 벽련봉(碧蓮峰)에 작은 바위 하나를 그려놓고 있는데 그 바위가 부침바위라는 설이다. 더 자세한 지명 연혁을 찾아봄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예부터 인왕산은 살구꽃, 산벚꽃, 복숭아 꽃이 봄을 장식했다고 한다. 인왕산 등산 중 길을 잃을 번했던 등산객은 마치 꿈에나 봄직한 도원(桃園)의 풍경이었다 술회하였고, ‘울긋 불긋 꽃대궐’로 노래했다.

부암동을 세상과 유리된 듯한 고요와 적막 그리고 어느 순간에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탐욕과 전쟁, 증오, 범죄가 없는 신비한 곳 ‘샹그릴라’가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했다. 지금도 앵두나무가 많고 지난 몇 년 간 백사실 계곡을 찾았을 때 앵두 향연은 또 기다려 지는 산책의 보너스다.

천재 시인 김관식은 1950년대 ‘자하문 밖’이라는 시에서, 부암동은 ‘청정히 수풀이 어우러진 곳’이라 찬사를 보내면서 ‘꾀꼴새의 매끄러운 울음 끝에 구슬 목청을 메아리가 도로 받아 얼른 또 넘겨 빽빽한 가지 틈을 요리조리 위돌아 굴러 흐르는 곳’이었다고 읊었다.

서울의 자하문(창의문) 밖 부암동을 찾아가는 길은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서너갈래 쯤 된다. 경복궁역에서 사직공원 방향으로 가다가 인왕스카이웨이를 따라 20여분 걸어가면 자하문 터널 위에 서고 왼쪽으로 고개돌려 나오는 곳이 부암동이다. 또 다른길은 경복궁 지하철역 2번출구나 3번출구에서 20여분 도로 따라 걸어가 청와대 길을 접어들면 북악산 허리 언덕길 따라 올라가면 자하문이 나온다. 터널을 빠져나가면 그곳이 부암동 거리다. 사직공원에서 인왕산 등산로 따라 기차바위쪽으로 내려가도 목적지에 이른다.

부암동 찾아가는 길은 산길로 접어들어도 좋고 시내도로를 따라가도 모두 매혹적인 길이다. 시내도로를 따라나서도, 큰 빌딩이 시선을 가로막지 않으니 북악산과 인왕산에 시선을 주며 여유롭게 찾아갈 수 있어 트레킹하기 좋은 천정 산책길이다.

자하문을 빠져나가면 북한산과 인왕산 두 산의 기슭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북한산은 먼 그림으로 다가선다. 자하문 터널을 가운데 두고 부암동은 인왕산 마을과 북한산쪽 마을로 나뉘어 지는데, 인왕산 기슭쪽 마을이 더 조용한 분위기다.

부암동에 가까이 다가서면 서울은 깊은 산록속에 깃들인 도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산은 비록 높은 산이 아니더라도 신비한 골짜기와 샘물을 지니고 있다. 청와대 바로 eln 자하문 고개 위, 북악산록은 마을 하나를 고요하고 오래되었고, 남루하듯 옛날이 생각나는 마을 하나를 용케 숨겨두고 있다.

행정구역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옛날의 동네 이름은 뒷골이다. 봄이면 앵두꽃과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자하(紫霞)를 이루는 동네다. 자하(紫霞)는 검붉을 자(紫)와 놀 하(霞)자를 쓴다. 사람 때를 타지 않은 1960년대식 농촌의 모습을 유지한 채 숨어 있다. 산에 들어서면서 산의 너른 품에 놀란다. 뒷골 사람들은 산비탈에 씨앗을 뿌려, 곡식과 채소를 거두고, 겨울을 위해 그것들을 갈무리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농촌마을이다.

부암동만큼 역사와 문화가 빽빽하게 자리잡은 동네와 골목도 드물 것 같다. 그것이 자연생태와도 잘 연결돼 있다. 그것은 바로 백사실 계곡이다.

종로구는 부암동을 둘러볼 수 있도록 동네와 계곡에 친절한 안내판을 세웠다. 벽련봉에서 부암동쪽 골짜기가 무계동(武溪洞)이다. 동(洞)은 아름다운 계곡을 의미한다. 버스가 다니는 자하문길을 사이에 두고 무계정사로 가는길과 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부암동 마을주민센터 뒤쪽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서면, 고목들이 빼곡한 숲이 기다린다. 느티나무, 신갈나무 그리고 소나무들은 마을의 연륜을 가르킨다.

숲 속 고목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오래된 마을에서 ‘힐링’을 느끼며 시선을 돌리니 무계원(武溪園)이라는 현판을 단 한옥과 마주하게 된다. 조선 말기 서양화가 이병직의 집이었던 이 한옥은 호텔 신축관계로 헐리게 되자 종로구는 현위치로 옮겨왔다. 안평대군의 무계정사(武戒精舍)가 있었던 자리에 세워져 무계원이라 이름을 붙이고, 전통문화 공간으로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이곳은 안평대군이 꿈에 본 무릉도원과 비슷한 장소라고 한다. 안평대군은 이를 안견(安堅)에게 이야기를 했고 안견은 그 이야기를 듣고 3일만에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렸다. 안평대군은 이곳에 무계정사를 세워 글을 읽고 활쏘기를 했다는 전설의 장소다.

무계원에서 골목을 따라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면 대한제국 시기에 법무대신을 지낸 반계 윤웅렬(磻溪 尹雄烈)의 별장이 있다. 윤웅렬은 조선말 개화파 윤치호의 부친이다. 1906년 건립당시에는 서양식 붉은 벽돌집이었으나, 윤웅렬의 셋째아들 윤치장이 상속을 받아 한옥건물을 더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 맞은편에는 폐허가 된 듯 허물어져가는 집 한 채에 잡초 우거진 빈집터가 있다. 소설가 현진건의 집터다. 이곳에서 현진건은 일제강압의 시기, 고단하고 핍박받는 민초들의 삶을 그린 소설 ‘빈처’, ‘운수 좋은 날’ 등을 썼다.

‘도심의 숨겨진 정원’ 백사실은 바로 청와대 뒷동네다. 백사실 계곡을 둘러보자면 부암동의 이곳저곳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에서 부암동 주민센터를 들머리로 옛자취를 들러 보았다.

부암동은 오래된 집들의 골목, 조선시대 고택들, 카페와 화랑 등이 어우러져 보기 드문 동네다. 그런 명성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가 적지 않다. 영화 ‘동감’(2000)을 촬영한 집과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에서 삼순이네 집,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2007), ‘찬란한 유산’(2009) 촬영지 등이 있다.

그래서 이곳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은 동네라 한눈에 다 들어오고 한 손에 다 잡힐 것 같으면서도 워낙 티를 내지 않는 주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놓치기 쉬운 명소들이 숨어 있는곳이 부암동이다. 부암동에 가면 먹고, 쉬고, 구경할 만한 명소를 먼저 공부하고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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