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무쟁이 물쑥이라 / 달래 김치 냉이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나물 캐오리라 /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도랏 / 어아리를 일부는 엮어 달고 일부는 무쳐먹세         - <농가월령가 2,3월 중에서>

바구니와 칼을 들고 봄 들판에 나가 가장 먼저 캐는 나물은 쑥이다. 논밭두렁에서 어린 새싹들을 칼로 딴다. 정월 보름 햇불로 태운 밭두렁, 논두렁 따라 지천으로 돋아난 쑥을 도려낸다.
예부터 몸이 찬 사람은 봄쑥이 좋다고 했다. ‘봄쑥은 처녀 속살을 키운다.’는 말도 회자된다. 섬쑥을 최고로 친다. 통영 도다리 쑥국은 벌써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이제 쑥국에 이어 쑥떡 먹을 날이 기다려진다.

쌉싸름하고 향긋한 맛의 달래와 냉이가 제 맛 나는 계절이다. 봄나물 중에서도 달래와 냉이는 이른 봄 우리 식탁과 가장 친근한 녹색채소다.

달래와 냉이는 무침, 샐러드, 찌개로부터 전, 튀김요리까지 다양한 메뉴로 식탁에 상큼한 봄의 미각을 제공한다. 요즘 시판되는 봄나물은 야산에서 절로 자란 자연산은 드물고, 대부분이 비닐하우스나 노지에서 재배한 농작물이다.

‘비닐하우스산은 야생 달래에 비해 향은 덜하지만 연하고 깨끗하다.’ 냉이는 냉(冷)한 노지에서 재배하는 봄나물이다.
“노지 재배한 냉이는 자연산과 다를 바 없다.”
“3월까지 눈 맞고 자란 냉이는 작황도 좋고, 냉이는 혹한에 얼었다가도 햇빛이 나면 되살아나며 추우면 추울수록 뿌리가 깊게 박혀 뿌리의 맛과 향이 최상”이라고 한다.

나물은 산나물, 들나물, 재배나물로 나눈다. 냉이는 들나물이다.
나물은 재료를 날로 무쳐서 먹는 생채(生菜)와 데치거나 삶은 다음 무치거나 볶는 숙채(熟菜)로 나눈다. 나물조리법은 다양하나 쉽지 않다. 쌉쌀한 맛과 향을 모두 살리는 게 최고의 조리법이다.

봄은 입맛으로부터 온다. 냉이는 봄나물의 전령사다. 모든 냉이는 맛과 향이 진하다. 철분, 칼슘, 마그네슘 등 무기질과 비타민도 풍부하다. 별다른 시설이나 관리가 필요 없다. 농약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가장 먼저 움튼다.

냉이(나승개, 나성개, 나생이)는 땅이 덜 풀렸을 때 나오는 풀이다. 냉이, 달래, 쑥, 고들빼기 그리고 돌나물... 이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란다. 봄 햇살에 습기만 있어도 움튼다. 전국에 분포하고 특산지가 없다.

그래서 ‘아흔 아홉 가지 나물이름만 외우고 있어도 굶어죽을 걱정 없다’는 말이 생겼으리라.
흙 틈새가 조금이라도 있다 싶으면 안간 힘을 다해 여린 싹을 드밀어 올린다. 냉이는 억새다. 용을 쓰고 올라온다. 그 힘은 질긴 뿌리에서 나온다. 무수한 실뿌리가 방석처럼 퍼졌다. 냉이는 논두렁, 밭두렁 양지 바른 비탈에서 잘 자란다. 온갖 무기질 냄새가 배어 있는 뿌리는 새봄 흙냄새가 물씬 숨어 있다. 냉이는 당분, 단백질은 시금치의 2배, 칼슘은 3배나 더 들어있다.

나물은 과거 초라한 밥상의 상징이었다. 주린 배를 채워주던 서글픈 음식이었다. 요즘은 밥상에 오르면 건강식으로 최고 대접을 받는다. 겨우내 떨어진 기력에 자연의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활력소다.

흙냄새 물씬 스며든 냉이의 가늘고 긴 뿌리는 무기질 덩어리다. 간에 좋다면서 술꾼들은 속 푸는데 안성맞춤이라며 된장 멸치 육수에 냉이 몇 포기와 바지락을 넣어 보글보글 된장국은 술 먹을 기운이 생긴다며 즐거워하지 않던가.

이른 봄 말날을 택하여 전통 간장을 담그고 된장도 마련하니 된장의 오덕(五德)으로 발전한다.
장이 숨쉬며 찾은 제 색, 꺼먼 된장, 그 오덕 첫째가 ‘단심(丹心)’으로 다른 맛과 섞여도 고유한 향기와 자체 맛을 잃지 않는다. 둘째가 ‘항심(恒心)’이니 오래도록 상하거나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셋째는 ‘불심(佛心)’이라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없애면서 본래의 자양은 생선이나 고기보다 못하지 않다. 넷째 ‘선심(善心)’이니 매운맛이나 독한 맛을 중화시켜 부드럽게 해준다.
다섯째는 ‘화심(和心)’이라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의 동화를 이룸을 일컫는다.

힘들게 이겨낸 이른 봄 우리 어머니들의 봄나물 국이나 찌개엔 오덕을 갖춘 된장이 녹아 들어갔다. 어머니 손은 마이더스의 손길, 부족했던 국속에 냉이까지도 들어갔으니 된장의 구수한 풍미와 함께 냉이는 인체와의 융화가 잘 되는 우리나라 음식의 대표적 상징이 되지 않았을까!
옛날부터 건강한 몸을 ‘된장살’, 그런 힘을 ‘된장힘’이라고 한 것도 된장이 모든 음식의 기본이었기 때문이었을 듯싶다.

냉이를 고를 때는 진한 향과 잎과 줄기가 자그마하고, 잎의 색이 짙은 녹색을 띠는 것이 좋다. 뿌리가 너무 굵거나 질긴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냉이를 사오고 나서는 뿌리의 흙을 털어내고 누렇게 변한 겉잎을 깨끗이 다듬어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준다.

냉이국을 끓일 때 뿌리도 함께 넣으면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냉이의 참맛을 살려낼 수 있다. 냉이를 데워서 우려낸 것을 잘게 썰어 나물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냉이의 대표적 조리법은 소금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당군 뒤 오이, 양파 같은 다른 야채와 초고추장 양념에 버무르는 초무침이다.

달래(달룽개)는 ‘작은마늘(소산, 小蒜)’이다. 들에서 나는 마늘(야산, 野蒜)이라고도 부른다. 매콤하고 쌉싸래하다. 알큰한 ‘작은 마늘’이다. 비타민 A는 냉이의 3배, 쑥의 2배가 들어있다. ‘달래 먹고 맴맴’ 코를 톡 쏜다. 달래는 호미나 칼로 캔다. 달래냉이는 캐고, 쑥, 원추리, 취, 고사리는 뜯는다. 뿌리까지 먹는 것은 캐고, 잎만 먹는 것은 뜯는다. 조선양념간장에 넣어 날로 먹는 ‘달래간장’이 최고다. ‘하얗고 둥근 뿌리’ 한 겨울동안 언 땅에서 알뿌리를 키웠으니, 경탄스럽다. 달래는 논두렁 밭두렁에 많다. 모여 있기 십상이다. 두부, 팽이버섯과 함께 바글바글 끓인 달래찌개는 감칠맛이 샘솟는다.

옛사람들은 냉이와 씀바귀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봄나물로 꼽았다. 냉이는 군자(君子)로, 씀바귀는 소인(小人)으로 비유했고, 냉이를 지조와 학문의 표상으로 삼은반면 씀바귀로는 실연의 아픔을 묘사했다. ‘시경(詩經)’에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했나, 달기가 냉이와 같다’는 노래가 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이 옛정을 그리워하면서 아프고 쓰라린 마음을 반어법으로 표현했다. 버림받은 자신의 고통이 씀바귀보다도 더 쓰다는 뜻이다. <시경>의 시대적 배경이 기원전 7세기 무렵인데 시련의 아픔을 왜 하필이면 냉이와 씀바귀에 비유했는지 오늘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아마 당시에도 사람들이 주로 먹는 봄나물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조선전기의 문신 변계량도 씀바귀를 구박하는 시를 썼다. ‘황당한 글 가지고 책 끝에 쓰려하니 / 씀바귀가 채 속에 섞인 것 같아 부끄럽구나.’ 라고 읊었다. 자신의 글을 낮추면서 씀바귀에 비유한 것인데 옛사람들의 씀바귀 구박의 실제는 한자에서 나타난다. 씀바귀는 한자로 도라 쓴다. 씀바귀 도를 풀어헤치면 풀초(草)와 나머지 여(余)가 된다. 풀초(草)와 나머지 여(余)자로 이뤄진 글자다.

씀바귀도자는 나물 중 좋은 곳은 다 고르고 남아있는 여분의 나물이란 의미다. 먹을 때는 쓴맛이 몸에 좋다. 칭찬일색이, 기껏 실연의 아픔을 상징하거나 버리기 직전 나물이라니, 냉이에는 칭찬일색이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냉이는 따뜻한 음식이라 오장을 조화롭게 한다며 중국 송 시절 채원정은 냉이를 먹고 높은 학문의 경지를 이뤘다고 했다.

중국 역사책<송사(宋史)>에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채원정이 냉이를 씹어 먹으면서 주린 배를 달래가며 학문을 닦은 후 주자를 찾아가 제자로 삼아 줄 것을 청했다. 그의 학문을 시험한 주자가 “이 사람은 나의 벗이지 제자의 반열에 들 수 없다.”고 말하며 곁에 두고 수시로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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