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사회의 소(牛), 유목민의 양(羊)은 온순하고 얌전하며 충성스러운 동물이다. 농경사회 옛 시조에서는 기본인 농사에 매진 충실하라 하지 않았겠나.

풍파(風波)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물도곤 어려워라
이후란 말도 말고 배도 말고 밭 갈기만 하리라

소의 되새김질 위는 4실, 긴 창자 구절양장(九折羊腸) 세상살이 양의 창자처럼 산길이 꼬불꼬불하고 험함에 비유되었다.

양 찾기만큼 어려운 학문, 달아난 양을 찾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서 양을 잃었다. 학문의 길이 다방면으로 갈려 진리를 찾기 어려움에 비유되었다. 전국시대 사상가 극단적 개인주의 주장 양자(楊子)의 이야기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의 고사다. 진리의 근본은 한가지라는 뜻, 기본에 충실하라는 충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망양보뢰(亡羊補牢)
‘양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라’. 더 나아가 겉으론 번질하나 속은 변변치 못하다는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대가리 걸어 놓고 실은 개고기를 팔고 있듯이 겉보기에만 빛을 발휘해서는 경영목표를 어찌 달성할건가.

을미(乙未)년의 을(乙)자는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봄 새싹이 꼬불꼬불 움터 나오는 모습을 본뜬 글자다. 미(未)는 양기와 음기가 교차하는 오후의 첫 시간 또는 여름과 가을의 교차점을 뜻하고 과도기를 맞아서 새로운 날갯짓을 하고 꿈틀거리고 자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한다.

우리 문화에서 양(羊)은 주로 상서로운 동물로 등장한다. 양은 겉은 부드럽고 안은 강건한 외유내강형이다. 꿈에 양을 보면 길몽으로 여긴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전통사회에서도 양띠 해에는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온순하고 순박한 양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다.

숫양은 힘이 넘치며 성격이 조급해, 울타리에 뿔이 잘 걸린다. 남보다 앞으로 가려는 속성을 꺾으려 하지 말고 뒤에서 슬슬 모는 슬기가 필요한 것이 양이다. 옛날엔 ‘담배 담배’하고 부르면 양이 잘 따라왔다 한다.

담배는 남병초(南炳草)라 할 정도로 화기가 강하고 양(염소) 또한 화기 덩어리에 고기맛이 좋아 양을 상징하는 ‘미’자 앞에 ‘구(口)’자를 써서 ‘맛미(口+未=味)라 한다. ’미(味)‘자가 양을 상징할 정도로 양고기가 맛이 있다.

양은 다른 무리에서 온 양을 식별할 줄 안다. 양치기의 얼굴은 길게는 2년까지도 기억한다. 어떤 능선바위, 냇물이 목초지의 경계인지 한번 배우면 잊지 않는다. 새끼의 새끼에게 가르치면서 수백년 뒤까지 대대전승은 우리 인간의 자자손손 전승과 다름아니라 하니 흥미로운 동물이다.

양은 기원전 9,000년 경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길들여지기 시작하였다. 개, 순록, 염소보다 늦게 양을 뜻하는 라틴어 ‘오비스(Ovis)’와 암양을 뜻하는 ‘유(Ewe)’는 모두 산스크리트어 ‘아비(Avi)’에서 나왔다. 이 단어의 어근 ‘아브(Av)’는 ‘지키고 보호한다’라는 뜻이다.

지금은 목축과 농경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양은 현실적이되 비현실적인 동물이다. 무라카미 하루기의 <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양을 보겠다고 홋가이도까지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지역으로 가야 목장의 많은 양을 볼 수 있다. 양은 작정해야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양과 꿈 이야기는 흥미롭고 신비하다. 양과 잠 이야기는 설화, 꿈, 속담에서 언제나 유순하고 인내심 강하며 상서로운 동물로 나타난다. 속죄양, 희생양, 길 잃은 어린 양, 선한 목자, 잠이 안 올 때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는 기독교 문화에 바탕을 둔 서양 이야기다. 성경 속엔 양 이야기가 500번이나 인용되고, 초원 위에 흰 구름처럼 몰려가는 양떼 같은 기독교적 성화도 많다.

전통 민속학에서는 자신이 태어난 동물의 생태적 특징을 사람의 성격 내지 운명에 결부해 풀어내는 독특한 ‘띠 문화’가 있다.

양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온순하고 침착하며 욕심이 없는 성격이며, 좋은 먹성으로 먹을 것을 잘 가리지 않는 양의 형태에 비유한다. 집안 사정이 가난해도 개의치 않고 학구적이고 사색적이며 간섭을 배제하고 자존심도 강하여 간혹 대인관계에서 담쌓고 외톨이 인생도 있으나 양띠의 직업은 교수, 언론인, 예술인에 적성이라 풀이한다.

민속학에선 띠 동물끼리의 어울림, 회피관계를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반영 궁합을 보고 있다. 쥐는 양의 배설물을 가장 싫어한다. 양의 배설물이 조금만 몸에 묻어도 몸이 썩어 들어가며 털이 다 빠져 버리기 때문에  쥐띠와 양띠는 상극으로 간주한다. 꿈에 나타난 양은 착한 사람, 진리, 재물로 풀이되고, 양을 끌어다 집안에 매면 어질고 선량한 사람을 구하거나 재물을 얻게 된다.

양고기를 꿈에 먹으면 학문연구를 잘하게 되거나 책임 있는 자리에 앉게 되는 길몽이란다. 문학작품에서는 양의 하얀 털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과 정다움으로 여성적인 상냥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금아(琴兒) 피천득(1920-2007)의 시 ‘양’을 옮겨본다.  ‘양아 양아 / 네 마음도 네 몸 같이 부드럽구나 / 양아 양아 / 네 마음은 네 음성같이 정다웁고나’

양을 둘러싼 꿈들, 허황된 것을 살펴본다. 이성계(李成桂)는 야인시절 불길한(?) 꿈을 꾼다. 양을 잡으려는데 양의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졌다. 무학대사의 해몽은? “양(羊)”에서 ‘뿔’ 과 ‘꼬리’가 떨어지면 ‘왕(王)’자가 되는 장차 임금이 되시는 꿈입니다.”

모세의 꿈 이야기, 미디안으로 망명한 모세, 결혼하여 장인의 양을 친다. 모세의 꿈에 훨훨 타오르는 가시덤불 속에 신이 나타나 명(命)한다. ’이집트의 이스라엘 후손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거라‘ 모세는 사람들과 양떼를 몰고 가나안으로 간다. 모세는 후세에 이름을 남긴 최고(最古)의 양치기가 아니겠나! 죽간(竹簡)으로 된 책을 읽다가 양을 잃어버려 독서망양(讀書亡羊)이란 사자성언을 남긴 장(藏)이란 양치기 이야기.

양을 치는 게 힘들고 고됐으면 거짓말을 할 여력이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던지게 만드는 ’양치기소년‘이야기. 양치는 일의 고역대신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아가씨에 대한 연정으로 유명해진 ’별‘의 양치기 알퐁스 도레의 사랑이야기. 양치기는 여유향락 모두 양 때문이었다.

양치기의 근심은 양들이 맹수의 습격을 받는 일이었다. 양치기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 양 우리에서 양을 세기 시작했다. 우리가 불면에 시달릴 때 양을 세는 것의 기원은 양치기들의 근심이다. 프랑스어‘Compter les moutons’라는 관용어는 ‘잠을 청하기 위해 양을 세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양치기의 근심은 우리의 근심으로 이어졌다. 양의 새끼의 새끼까지처럼 우리들도 자자손손이니 우리조상은 양치기였을까? 잠이 안 오면 양을 세볼 일이다. 꿈나라에 들면 양털은 구름 속에서 영롱한 별과 함께 양의 평화롭고 안온한 세계 속에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김난도 교수가 선정한 2015년 소비트랜드 키워드는 COUNT SHEEP 이다. ‘양의해’ 일상의 작은 꿈들을 카운트하라. “count sheep ” 소비자들의 작은 일상에 새로운 기회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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