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에 길들여진 디지털 시대지만 사람들은 아날로그의 삶을 갈망한다.
 
오랜 시간 묵히고 익히는 전통 먹거리에서 선조의 지혜를 발견하고 삶의 여유를 찾는다.
 
슬로우푸드 마을, 자연의 품속에서 지친 몸 쉬어가는 그곳. 도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제2의 고향이다.
 
옛날 배고프던 시절 먹었던 쑥개떡, 보리개떡, 호박밥, 산나물토장, 수재비국 등 향수를 찾아, 예전에는 손님들에게 내놓기조차 민망했지만, 이제 기름기 없는 담백한 다이어트 건강식으로 오히려 적극 권장식품이 되었다. 봄날의 굶주림도 이젠 상품이다.
 
도토리 자체만을 놓고 보면 음식재료라기 보다는 다람쥐 먹이에 가깝다. 우리 조상은 도토리를 주워 새로운 식품을 만들어냈다. 도토리묵이다. 다람쥐 먹이인 도토리를 물리적으로, 또 약간은 화학적으로 변화시켜 만든 것이니 새로운 음식의 위대한 탄생이다.
 
도토리를 갈아서 그냥 찌거나 삶아 먹으면 단지 굶주림을 면하려는 구황음식(救荒飮食)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시대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엔 도토리는 굶지 않기 위해 먹는 열매로 묘사해 놓았다.
 
묵을 만들어 먹으면, 우리 인류의 최고 식품인 두부처럼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그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도토리묵을 도토리로 만든 두부라고 하였다.
 
이규경은 가을철에 도토리를 따서 껍질을 벗기고 갈아 체로 거른 후 끓여 굳히면 두부가 된다고 했다. 가늘게 썰어서 초장에 찍어먹으면 맛이 좋다고 했고, 간장에 무쳐 먹거나, 김칫국에 말아 먹으면 맛이 좋다고 써 놓았으니 그것은 오늘날의 묵밥이다. 국수나 율무와 함께 섞어 먹으면 묘한 맛을 내는 식품이 된다고도 했으니, 옛날엔 도토리묵을 먹는 방법이 지금보다 더 다양했던 모양이다.
 
도토리가루를 멥쌀가루, 느티나무잎과 섞어서 떡으로 만들면, 시골에서는 일등음식이 된다 했다. 또 곡식가루와 섞어 죽으로 먹을 수도 있었고 밥으로도 먹었다. 누룩과 섞으면 술도 담글 수 있었으니 도토리 막걸리의 탄생이었다.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도토리를 콩과 함께 반죽해 메주처럼 띄워내면 도토리로 장을 담글 수 있는데 그 장맛은 일품이어서, 평안북도 강계의 도토리 된장은 예부터 널리 알려진 식재료였다.
 
우리 선조들은 식약동원(食藥同源) 정신에 따라 도토리 음식은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좋은 별식으로 취급했다.
 
도토리는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먹었던 양식만은 아니었고, 양식이 부족할 때는 큰 보탬이 되기도 했다.
 
옛날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먹던 구황식품이 맛있는 음식으로 발전해 지금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참살이 식품으로 인기 상한가가 되었다. 도토리를 요리로 승화시킨 우리 조상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우리 한반도에는 1000여종의 나무가 자란다. 참나무는 넓은잎나무 종이다. 넓은잎나무 종류 중 참나무가 가장 많다. 늦가을 산에 오르면 낙엽이 흔하게 밟힌다. 우리나라 산에 쌓인 낙엽들 중에는 참나무과 잎들이 단연 많다.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이 6종류의 참나무를 합쳐 흔히 ‘참나무 육형제’ 또는 ‘참나무 육남매’라고 부른다.
 
참나무는 대체로 그 자라는 땅을 나누어 살아간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나 동네 뒷산에는 상수리 나무와 굴참나무가 흔하다. 땅의 힘이 좋고 습기가 많은 계곡에는 졸참나무와 갈참나무가 버티고 산다. 산능선 주변의 척박한 땅에는 신갈나무가 터줏대감이다. 떡갈나무는 습도가 적당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고갯마루를 좋아해 살고 있다.
 
참나무의 한자 이름은 진목(眞木)이다. 그 재질이 좋은 진짜 나무라는 뜻이다. 재질이 좋아 이름 붙여진 참나무는 곡괭이, 쟁기 등 연장 만들 때 쓰고, 참숯은 간장 속 해로운 물질을 없애준다. 오래토록 보관 가능한 도토리 열매, 흉년에 쌀, 보리 등 주식(主食) 대신한 양식이다. 임금이 백성 생각하면서 먹기도 했다.
 
도토리묵부터 산골지붕까지 쓰임새 많던 참나무, 그 열매가 도토리다. 참나무 육남매의 열매는 명칭도 다양하고, 그 형태도 다양하다. 그 이름에 ‘굴밤(졸참나무)’, ‘상수리(상수리나무)’, ‘도토리(떡갈나무)’가 대표적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동갈(갈참나무)’, ‘물암(떡갈나무와 신갈나무)’, ‘굴참(굴참나무)’로 부른다. ‘길쭉하고 열매가 가장 왜소한 것’은 졸참나무, ‘몸통부분이 깍정이에 많이 싸여 있고 둥근것’은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와 굴참나무 열매다. 그리고 통통하고 더 원형을 띤 것은 갈참나무와 신갈나무의 도토리 모습이다.
 
참나무잎과 열매의 종류에 따라 실생활에서 그 이름이 유래를 찾아보게도 되니 신기롭다. 옛날에는 시루떡을 찔 때 이 참나무잎을 밑에 깔고 저으니 떡갈나무, 옛날에 짚신바닥이 닳으면 이 나뭇잎을 깔고 신었으니 신갈나무, 굴참나무 껍질은 비가 새지 않고 보온성이 좋아 산골에서 지붕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굴참나무의 유래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당시 조선 선조 임금님은 궁궐을 버리고 북쪽으로 몽진했다. 몽진길에 임금님의 입에 맞는 변변한 음식이 없을 수밖에!
어느날 수라상에 올라온 음식 중 임금의 입맛을 사로잡은 도토리묵 “부드럽고 고소하고 참으로 별미로다.” 임금의 수라상에 항상 오르는 음식 ‘상수라’로 불리우다가 참나무는 ‘상수리나무’가 되었다.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은 참나무로 만든 움막집에서 살았다. 실제로 점말동굴을 비롯한 신석기 및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많은 참나무가 출토되었다. 역사시대에 이르러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전 기둥의 일부, 전남 완도 어두리에서 인양된 고려 초 화물운반선의 일부 외판(外板), 경남 창원시 의창 다호리 가야고분 관재(棺材) 등이 참나무다.
 
옛사람들이 쇠를 녹여 무기와 생활용품을 만들려면 섭씨 1000도 이상으로 온도를 올려야 하는데 석탄이 알려지기 전에는 품질 좋은 참나무 숯이 있어야만 가능했다.흉년이 들 때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는 배고픔 달래주는 귀중한 구황식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옛 기록을 살펴보자. 조선 중종 12년(1517) ‘황해도에 참나무가 많이 있는데 흉년에 아주 요긴하니, 지방 관서마다 이삼백 석을 저장하되 따로 창고를 만들어 흉년에 대비하게 하소서’라는 대목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인 선조27년(1594)에는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도토리가 가장 요긴합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흉년이 들수록 도토리가 더 많이 달리는 것은 참나무의 특성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하늘의 신조로 생각할 정도의 믿음이 생겼다.
 
참나무는 풍매화(風媒花)다. 꽃가루받이하는 시기는 모내기 직전의 늦봄이나 초여름이다. 비가 자주 오면 농사는 풍년이 든다. 그러나 참나무 수꽃가루는 암꽃을 찾아가기가 어려워 도토리는 적게 열린다. 풍년이 들어 곡식이 넉넉하면 도토리 생각은 열외다.
햇볕이 쨍쨍, 날씨가 가물면 모내기를 못하지만 참나무 꽃가루는 쉽게 날아다니니 도토리는 풍년이 들 수밖에!
 
흉년들면 도토리 먹고 연명하라는 자연의 신비는 정말 신통스럽다. 그러나 도토리 모으기는 힘이 너무 들었다는 푸념이다. 쪼르르 나무를 타고 오르거나, 총총 재빨리 뛰어가거나, 바위에 오똑 서서 두리번거리는 다람쥐, 그놈들은 낮에 주로 활동한다.
 
반짝이는 크고 까만 눈, 줄무늬 있는 갈색 등과 하얀배, 앙증맞은 귀... 그 귀여운 모습 때문에 ‘쥐’라는 이름을 달았다. ‘다람다람 다람쥐’, ‘달음질하는 쥐’ 그래서 다람쥐라. 볼이 불룩한 다람쥐, 먹이주머니 볼 속엔 한번에 10개씩 나를 수 있다니. 자기만 아는 곳에 파묻어 그러다 가끔은 어디에 숨겼는지 잊어버린다. 다람쥐는 제가 먹을 열매를 심는 셈인데... 왜 사람들은 도토리 열매를 싹쓸이 하는가? 몰라.
 
지구온난화, 참나무가 앞으로 소나무를 제치고 한국의 대표나무가 될 것이란다. 게다가, ‘도토리 거위벌레’, 도토리 좋아하는 반달가슴곰, 참나무 많은 숲에 살고 있으니, 도토리는 다람쥐에게 넘겨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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