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건강보험과 관련하여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 현재 전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보건의료제도인 「Medicare」가 1984년에 시행되었다는 점인데,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2차 대전 이후 서둘러 보편적인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 것에 비하면 흔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70~80년대 불어닥친 세계화로 많은 부분에서 이루어진 대대적인 개혁이 사회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호주의 의료제도를 통해 짧은 기간 동안 보건의료제도 자체가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볼 수 있는 한편, 어떻게 세계화에 대응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글에서는 호주의 보건의료제도를 재원조달과 의료제공이라는 큰 틀에서 개괄적으로 조명한 뒤, 효율성, 형평성, 의료의 질 등의 측면에서 평가해 보기로 한다.
재원조달의 측면에서 호주는 영국의 NHS와 같이, 조세를 재원으로 하고 부담능력에 관계없이 의료를 제공받는데, 주 정부는 연방정부의 보조금과 지방세의 약 1/3을 보건의료비로 지출한다. 또한 Medicare의 재원마련을 위해 소득의 1.5%(고소득자는 2.5%)를 별도로 부담하게 되는데, 이는 일종의 목적세로 1차 의료기관의 진료비를 위한 목적으로 지출된다. 2000년 기준, 소득의 일정률을 부담하는 보험료와 정부가 조세로 부담하는 것 즉, 공적재원조달 비율이 전체 재원의 71.2%로 비교적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환자본인부담금이 16.2%, 민간보험이 7.1%, 자선단체 기부금 등 기타 재원이 5.5%를 차지하고 있다. 본인부담은 1차 의료기관 이용시 부담하는 15%와 약국급여에서의 본인부담금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2차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공공병원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이 없다.
의료의 제공면에서, 1차의료는 주로 민간의료기관의 GP(일반개업의)에 의해서 제공되고, 행위별수가제에 의한 보상을 받는다. 주로 예방과 상담을 포함하여 간단한 수술도 시행한다는 점에서 여타 국가의 1차 의료기관의 기능과 같다. 다만 특이한 점은 1차 의료기관이 일정기준 이상의 예방접종을 한 경우 별도의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반대로 병원급 의료기관은 대부분 국영으로 전체 병원급 의료기관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민간병원은 대부분 규모가 영세하여 병상 규모가 50~100병상이며, 주로 당일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당일 퇴원하는 진료를 많이 담당하고 있다.
병원급 의료기관 및 대학병원의 진료비지불제도는 80~9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요약하면, 총액예산제로 연방정부로부터 자금을 배정받은 후 주 정부는 개별의료기관에 DRG방식으로 진료비를 지급하는 체계이다. 연방정부가 진료비를 5년 기간으로 과거의 진료실적과 의료의 질 등을 고려하여 총액으로 주 정부에 배정한다. 주 정부는 총액예산의 범위 내에서 병원진료비를 집행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주 정부는 5년 단위로 총액예산 내에서 집행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효율적인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므로 진료비를 억제하게 된다. 이는 마치 독일의 진료비지불과 같은 기능을 부여받는다. 독일이 연초 총액진료비를 배정한 후 연방의사협회는 점당단가에 따라 총액예산의 범위 내에서 각 의사에게 배분함으로써 진료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여 비용절감적 방향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호주는 총액예산제와 DRG를 혼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눈길을 끄는 것은 건강보험정책의 정책결정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이전한 것을 들 수 있으며 또한, 병원서비스 부분의 아웃소싱에서 알 수 있듯이 민간부분이 갖는 효율의 장점을 공공부분에 많이 접목하였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중심으로 간략히 몇 가지 방향에서 호주의 제도를 평가해 보기로 한다.

■ 첫째, 총 의료비 지출규모가 GDP 대비 8.5% 수준으로 비교적 높은 효율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민간주도의 의료제공체계, 분산적인 관리시스템 등 비효율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효율성 확보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 규제와 유인정책을 적절히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총 의료비 지출의 2/3이상을 점하는 공적재원을 근간으로 보험자가 의료기관에 대한 구매독점력(monopsony power)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간호사의 기능 확대를 통한 효율적인 의료자원 사용을 들 수 있다. 간호사는 예방접종, 건강검진, 건강상담은 물론 제한된 영역에서 처방까지 하고 있으며, 의료기관 내에서는 물론 독립하여 대체진료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다만, 분산적 관리체계로 과도한 관리운영비 지출요인을 안고 있는 것이 흠이다. 즉, 복잡한 연방정부와 주 정부간의 관리기능 중첩, 그리고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별도로 설립한 기관들이 무수히 많아 효율성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많다.

■ 둘째, 형평성을 제고하는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재원이 조세로 조달된다는 점에서 형평성을 확보하고 있다. 진료비가 많이 소요되는 병원서비스를 언제든지 무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차 의료기관 이용 시 환자가 부담하는 본인부담금을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면제하고 있다. 또한 농어촌 등 취약지역의 의료접근성 제고를 위해 그곳 소재 의료기관에 대한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민간보험 확대로 1997년 기준 국민의 32%가 가입한 점은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 셋째, 의료의 질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의료기관 인증제를 시행하여 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다. 독립적인 기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증거에 근거한 임상진료 지침을 개발하여 모든 의사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

■ 마지막으로 호주의 보건의료제도와 관련하여 관심을 끄는 것은 세계화와의 관계에서 보는 것이다. 사실, 아시아권 국가들 중 호주와 뉴질랜드가 70년대 이후 세계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많은 부분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호주의 경우 보건의료분야는 여전히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데 이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그만큼 건강보험에서 경쟁과 선택이라는 가치는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글 | 전창배■국민건강보험공단, London school of Economics 연수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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