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 환자집중 현상 고착, 의료전달체계 붕괴시켜

동일한 잣대도 문제...병원계 "정부의 전향적 의지 보여라" 강경


지난해 말 많던 의료기관 평가결과가 드디어 공개됐다.

당초 환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의료기관의 질적 개선을 유도한다는 목적으로 지난해 처음 실시된 의료기관평가는 지난 14일 평가결과가 공개됨으로서 해당병원마다 "一喜一悲"를 가져오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 채 일단 막을 내렸다.

이번 평가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의료의 질 관리라는 측면에서 진료수준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백화점이나 호텔의 서비스 수준을 점수화하듯이 의료기관의 서열을 매김으로서 앞으로도 많은 부작용을 양산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단지 이번 평가결과 이미 예상했던 1-3위를 한 서울대병원을 비롯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이른바 "빅 3"는 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약간의 순위만 변동됐을 뿐 여전히 건재를 과시한 반면 당연히 이름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비롯 고려대 안암병원 등이 중 하위권으로 밀려난 것은 상당한 이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평가결과에 대해 세브란스병원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즉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지난해 평가를 받을 당시에는 다음달 완공예정인 새세브란스병원의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만큼 다른 병원들이 부족한 부분에 예산을 집중하면서 까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공을 들이지 못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있는 그대로 평가를 받겠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10위권은 유지할 줄 알았다는 것이 세브란스병원측의 관계자들의 지적이고 보면 이번 평가결과에 대해서 병원측은 단순히 의료 질이 아닌 서비스 내용만을 놓고 평가하고 이를 서열화한다는 것에 상당히 불만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특히 이번 평가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평가내용이 서비스를 중심으로 환자들의 만족도와 시설, 장비 등에 초첨이 맞춰져 있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병원이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닌 단순히 서비스를 하는 곳이라는 여론을 일반인들에게 불어넣어 줌으로서 의료의 질이 곧 임상수준으로 결정되는 "의료서비스"의 특성이 아닌 친절이나 시설 등에만 치중하는 등 치료여부가 아닌 치료외적인 요인들에만 치중하는 등 모든 항목 자체를 78개 평가대상에 일률적으로 평가등급을 매긴 것은 큰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의료기관 선택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 대한 객관적 평가자료가 전무한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의료기관 평가결과는 절대적인 정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의료질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열세인 의료기관들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현실이고 특히 이럴 수록 경영사정이 악화된다고해도 투자를 감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평가가 의료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는 의료기관평가위원회 한 위원이 평가를 실시하면서 "의료기관평가 결과는 자칫 병원장의 투자 우선 순위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며 "고난이도 수술 등에 투자해서는 이런 제도하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우므로 의료의 질보다 친절교육과 시설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특히 병협은 이번에 발표된 의료기관 평가결과를 등급화한 것에 대해 해당 의료기관들로부터 큰 반발을 불러오자 성명서를 통해 "병원들을 등급화·서열화해 의료체계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으며,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집중 현상을 고착화하고 의료전달체계를 붕괴할 우려가 있다"며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평가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이 이른바 대형병원이나 재벌병원으로의 환자집중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우려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평가결과 1-10위를 차지한 병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자금력이나 전통의 대학 등이 강세를 차지함으로서 그렇지 못한 병원들과의 차이를 드러낸 점이다.

정부가 입만 열면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나 대학병원으로의 환자집중현상을 완화시킨다는 발표를 하면서도 정작 실질적으로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모순이다.

이 같은 모습은 최근 권역별 응급의료센터 순위와 이번에 의료기관 평가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서울대병원의 경우도 국내 최고대학병원이라는 자존심을 세웠다며 평가결과에 크게 환영하면서도 "서열을 매기는 의료기관평가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결과가 나왔으면 분야별로 각 병원에 자료를 제공하고 부족한 항목이 있으면 우수한 다른 병원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평가결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또 정부는 이번 평가결과를 마치 등급화하지 않았다는 표시로 각 항목별로 우수(A), 양호(B), 보통(C), 미흡(D) 등으로 분류한 내용을 발표했으나 언론의 속성상 각 의료기관마다 등급별로 자체적으로 서열화를 매겨, 발표함으로서 결국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모든 사항을 정부가 주도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300병상 이상 중소형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하반기에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였는데 대학병원이나 재벌병원과는 달리 규모나 경제적인 여건 등에서 큰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 병원들 마저 서열화를 매길 경우 그렇지않아도 심각한 경영난에 몸살을 앓고 있는 중소병원들의 경영난을 더욱 부채질 할 것으로 병원계는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중소병원협의회 김철수 회장(양지병원)은 "중산층이나 저소득층 환자의 병원이용도 감안해야 한다"며 "일부 대형병원 위주로 환자들이 집중되면 의료기관간에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 정부의 방침에 강한 불만을 보였다.

이번 평가결과 또 한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이 서울등 대도시와 지방 중소도시간의 평가결과 차이다.

실제로 2004년 의료기관 평가에서 10위권에 들어간 병원은 재벌병원인 강릉아산병원과 전통의 전남대병원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빅 3병원이외에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의정부성모병원, 강남성모병원,성모병원이 모두 10위권을 유지함으로서 역시 가톨릭이라는 이름값을 했고 이어 경희대병원과 이화대 목동병원, 강북삼성병원이 이름을 올렸을 뿐 나머지 지방대병원은 최하위에 그리고 지방소재 종합병원의 성적은 더욱 나쁜 상황에 이르렀다.

이번 평가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또 하나가 2004년 의료기관평가에선 2천 병상이 넘는 대형병원과 5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에게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 점이다.

현재 각 의료기관의 경우 규모별로 환자의 중증도도 다르고 입원환자와 외래환자의 비율이나 환자상태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어 제공되는 서비스도 다른데도 불구하고 종합전문요양기관과 종합병원을 단일 평가기준·평가체계를 적용함에 따라 종합전문요양기관은 거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으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병원들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는 올해 의료기관평가가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확대될 예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료기관 규모에 따른 평가기준 이원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또 평가과정에서의 객관성 확보와 평가요원의 전문성 및 눈높이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특히 지난해 평가과정에서는 평가요원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고, 평가요원별 눈높이가 달라 점수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됐다.


평가를 직접 분석한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평가요원 중 평가경험이 있는 유경험자가 16%에 불과했고 84%가 평가를 처음 경험했으며, 실제 평가경험이 없는 요원의 경우 평가하위 점수 비율이 유의하게 높게 나타나기도 했으며 평가요원이 기준을 잘못 이해하거나 누락해 평가가 끝난 후 78개 평가대상 기관 중 44개 기관에서 260건의 이의신청이 들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1개 평가팀이 2개 병원을 평가하는데 평가팀별로 조사 성실도가 크게 차이를 보인 점도 향후 개선돼야 할 부분이며 평가전반기 병원보다 후반기에 평가를 받은 병원의 점수가 높아 병원의 한시적 과잉대응도 지적됐다.

따라서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선 유경험자 위주로 평가요원을 선발하고, 교육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또 상임평가요원을 확보하고 수시평가나 불시평가로 과잉대응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병협은 이번 평가결과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 성명서를 발표한데 이어 문항개선과 병원계의 자율적 평가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정부의 평가에 협조할 수 없다는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정부의 전향적 의지가 없다면 평가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점에서도 드러나 듯이 어떤 방식으로든 의료기관 평가는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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