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년 전, 지구의 유기화합물 웅덩이에서 최초의 세포가 생기면서 온 생명이 시작되었다.

가장 적당한 조건에서 하나의 정자와 하나의 난자가 결합함으로써 한 사람의 낱 생명(個體生命)이 태어났다.

하나의 생명이 만들어지기 위해 왜 수십 억 마리의 정자와 수십 개의 난자가 엑스트라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자의 수가 반 이상으로 줄어들게 되면 임신이 안 된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냥 죽어 버리는 수십 억 마리의 정자도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하고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주나 지구, 계절까지도 생성수장(生成收藏)의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 출생하고 발생하고 생긴다. 그리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자란다. 그 다음엔 수확하고 추수하고 거두어들인다. 마지막으로 저장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봄에는 새싹이 나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에는 과일이 무르익고, 겨울에 열매는 죽되 다음해를 위해 씨앗을 남기는 것과 같다.

사람은 태어나서 유아 소년기를 거치고, 청춘기에 혈기 왕성하게 성숙하고, 장년기에는 과일이 무르익듯이 그동안 추구하고 노력한 것을 거두어들이고 정착하며, 논년기에는 과일의 씨앗처럼 다음 대를 이을 후손을 키워 남겨 놓고 쇠퇴되어 간다.

몸 안의 세포도 생성 성장하여 자기를 이을 세포를 복제해 놓고 죽어간다. 사람의 몸은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1000만 개가 매 초 죽어 가고 같은 수의 세포가 새로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간세포는 8일 만에 2분의 1이 새 세포로 바뀌며 보름이 지나면 완전히 새로운 간이 된다.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6개월이면 새 것으로 바뀌고, 내장 세포가 다 바뀌는 데는 3년, 뼈까지 완전히 바뀌는 데는 6년이 걸린다.

낱개 세포가 죽는 것은 새 세포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몸 전체를 싱싱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자연이 택한 방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삶을 위해 존재한다. 죽음을 바탕으로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다. 모든 세포가 죽는 수만큼 계속 새로 복제된다면 그 생명체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 세포는 일정한 시기까지만 복제되고 그 후에는 복제를 멈추게 된다. 이것이 그 세포의 운명이다. 자연의 섭리에 의해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세포가 각기 제 명을 다하면서 주어진 세대수만큼 복제한다면 인간은 인간의 자연수명인 120세까지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세포가 몸의 여기 저기서 고르지 않게, 주어진 복제 횟수를 미리 끝내 버리면 형태와 기능이 점차 쇠퇴하여 노쇠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가령 A라는 장기가 100개의 세포를 가지고 있고 그 모든 세포가 70년 동안에 50회의 복제를 되풀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되었다고 할 때, 매년 10개의 세포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주어진 50회의 복제를 정상보다 짧은 기간 내에 끝내 버린다면 장기 A의 형태와 기능은 첫해에 90만 남을 것이고 둘째 해에는 80만 남을 것이다. A 장기의 기능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뜻이고 그만큼 노쇠화됐다는 말이다.

세포의 크기가 정상 이상으로 커지거나 작아지면, 세포의 수가 정상 이상으로 늘어나거나 줄어들면, 또는 몸의 전체 질서에 따르지 않고 세포가 제멋대로 행동하면 우리는 이를 병(病)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변화가 간에 생기면 간 질환, 위에 생기면 위 질환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변화 때문에 생기는 모든 병의 종류는 염증, 세균성 감염, 퇴행성 변화, 신진대사 장해, 외상, 종양 등 고작 몇 가지뿐이다.

기능을 상실한 세포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궁극적으로 폐나 심장이 뛰지 않고 숨을 쉬지 않으며, 불을 갖다 댔을 때 눈동자가 오므라들지 않으면 임상적 죽음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뇌파 검사로 뇌파의 활동이 완전 중지되면 뇌사로 인정한다.

살아 있는 것의 절대적인 공통점은 죽는다는 것이다. 죽지 않는 것은 살아 있지 않은 것뿐이다. 살아가고 있는 것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인이 좪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좫라고 한 말은 좪모든 생명을 사랑해야지좫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몸속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의 죽음은 몸 전체를 싱싱하게 살리기 위함이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은 인류 전체를 건강하게 지속시키기 위함이고, 낱 생명의 죽음은 온 생명의 삶을 지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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