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았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덕담을 나누며 갖가지 다짐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올 을유년은 더 큰 감회와 성찰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나면서 보람차고 빛나는 나라를 만들자고 다짐한 지가 벌써 환갑이 되었다. 그렇게 환력의 세월을 흘려보냈지만, 지금 우리의 형편은 그때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다. 마음과 행실이 엇박자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마음이 있듯이 나라에도 마음이 있다. 지혜롭고 너그러운 사람이 이웃으로부터 존경을 받듯이 지혜롭고 너그러운 나라가 선진국의 예우를 받게 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격이 있다. 인격이 모자라는 사람에게 돈이 많은 경우를 졸부라고 하듯, 나라에도 격이 없으면 아무리 부자로 살아도 이웃나라로부터 무시를 당한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40여 명이 파출소로 달려가 ‘우리 선생님을 잡아가라’고 고발을 했다. 겨우 여덟 살짜리 어린이들이 스승을 고발하다니. 이런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더 두려운 것은 그런 아이들을 품안에 두고 세상에 없다고 다독이는 부모들의 위선이다. 이들에게 그 위선의 마음이 비치는 거울을 새해의 선물로 주고 싶다.

요즘 한국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 욕설과 비속어에 소름이 끼치다 못해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문자로 작품을 써야하는 작가들에게 주어진 덕목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모국어를 탁마하는 일이다. 국어를 갈고 닦아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 소임은 국어학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작가들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권리다. 제나라 말 중에서 가장 품위 없고, 천박한 말들만 주워 모아서 작품을 쓰고, 그것을 배우들에게 외치기를 강요하는 감독이라면 작가이기 전에 지식인의 반열에도 들 수 없다. 이들의 무지와 만용이 비쳐지는 거울을 마련하여 새해의 선물로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유니세프에서 아시아 17개국의 청소년 2만 명에게 물었다. ‘당신은 집안의 어른을 공경하느냐’고. 공경한다는 긍정적인 대답의 평균치가 78퍼센트로 나왔다. 유교권의 국가요, 한자문화권의 국가라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각 나라마다의 집계를 보면 그게 아니다.

베트남이 92퍼센트, 중국이 70퍼센트, 홍콩이 39퍼센트로 나왔다. 한국은 어떻게 나왔을까. 놀라지 말라, 13퍼센트로 나왔다.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 칭송받았던 나라의 청소년들이 왜 이 모양인가. 동방의 등불이라고 찬양받았던 코리어의 현 주소가 바로 여기다. 대체 누가 우리의 청소년들을 이런 지경으로 몰아넣었는가를 심각히 성찰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앞날을 가늠할 수가 없다.

지식인 사회가 무너지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가치의 판단에 혼란이 오면 ‘정신적 공황’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 현상은 정치를 잘 못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차원에서 들여다 볼 일은 더욱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의 부모들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력을 잃으면 그 가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 가정이 즐비한데 학교의 교육이 성해 남을 까닭이 없다. 학교의 교육이 흔들리는 것은 선생님들의 역사인식이 무너지는 데서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물론 대학교수도 포함되지만, 시나리오작가나 감독 등 포괄적인 의미의 지식인도 포함 된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자꾸 반복되고, 생겨서는 안 될 일들이 도처에서 생겨나는 것은 이미 ‘정신적 공황’이 중태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이 ‘정신적 공황’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사람에게도 나라에도 희망이 없다.

‘정신적 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표방하는 가치의 흐름을 바로 잡아야 한다. 옳고 그른 것, 어질고 사나운 것, 깨끗하고 더러운 것, 해야 할 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별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이 간단한 이치를 자꾸 모른다 하고, 외면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황량해진 마음이 비치는 거울을 하나씩 선물하고 싶다.

21세기의 험한 파도가 우리를 시험하는 시기를 미래학자들은 2020년경으로 보고 있다. 그 때가 되면 중국의 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마치 그것을 입증이나 하듯 13억 중국이 ‘동북공정’을 앞세우고 욱일승천의 기세로 치솟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거기에 가서 불법체류하면서라도 그쪽 3D를 떠맡아야 하는 시기가 코앞에 와 있는데도 이 땅의 예술인들은 욕설과 비속어를 남발하면서 모국어를 욕보이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비치는 거울을 마련할 생각을 못한다. 모자라니까, 창피한 것도 모르니까.

새해를 맞았으면서도 두렵고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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