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범위 협소하고 제공 서비스도 복지행정에 너무 의존

  커뮤니티케어’는 보편적 복지에 대해 확고한 자기 철학 견지

지난해 11월 국회에 발의된 ‘지역사회통합돌봄법’ 제정안이 ‘복지’ 측면에만 편중돼 있고 ‘보건의료’ 역역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하의대 임종한 학장은 “‘커뮤니티케어’라는 것은 보편적 복지 지향에 대한 명확한 자기 철학을 갖고 있는데, 이 법안의 구조는 그렇지 않다”고 전제하고 “법안의 대상 범위가 아주 협소하고, 제공 서비스 형태가 복지와 행정에 지나치게 의존되어 있으며, 보건의료가 갖는 사례관리의 전문성 같은 내용이 고려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이 개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한 제1회 커뮤니티케어 포럼이 지난 19일 온라인으로 진행됐다(오른쪽 위는 좌장을 맡은 홍윤철 원장, 왼쪽 위는 임종한 학장, 아래는 패널리스트).

임 학장은 지난 19일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이 개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한 제1회 커뮤니티케어 포럼에서 ‘커뮤니티케어와 지역의료 생태계 조성 방안’ 주제를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주제 발표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패러다임 전환으로 ‘고령화’ 해결해야

"우리 사회는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어 조만간 일본을 추월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어느 사회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의학저널 <란셋>은 2030년 세계 최초로 기대수명이 90세로 접어드는 나라가 출현하다고 예측했는데, 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기대수명이 90.8세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 노령인구의 만성질환을 효율적으로 예방ㆍ관리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사회가 의료비 부담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커뮤니티케어의 요구가 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지역사회 내에서 의료서비스가 돌봄서비스와 유기적인 연계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커뮤니티케어는 “병원에서 지역으로”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가능하다."

   
▲ 인하의대 임종한 학장.

  “국회 발의된 ‘통합돌봄법’안, 문제 있다”

"국회에 계류중인 ‘지역사회통합돌봄법’안은, 명칭은 ‘통합’인데 내용은 ‘또 하나의 분절화된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가령 전달체계는 ‘복지’ 쪽만 언급되고 ‘보건의료’는 빠져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를 보강한 뒤 법안의 명칭을 ‘지역사회의 보건 및 돌봄(또는 사회복지)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또는 ‘지역사회 보건복지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돌봄 서비스는 그것이 필요한 대상자 모두에게 제공돼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커뮤니티케어’라는 것은 보편적 복지에 대해 명확한 자기 철학을 갖는다. 그런데 법안은 선별 복지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대상이 굉장히 협소하고 제공 서비스 형태가 지나치게 행정과 복지에 의존돼 있으며, 보건의료가 갖는 사례관리의 전문성 같은 것들이 고려돼 있지 않다.

지역의료의 생태계 조성과 관련해서 지자체의 책임성을 분명히 규정하는 한편, ‘지역사회통합돌봄센터’의 역할이 명확히 제시돼야한다. 센터를 통해서 복지나 돌봄, 보건의료 자원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행정 혹은 보험공단 관계자들이 사례관리를 진행한다면 과연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굉장히 회의적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법체계를 기반으로 커뮤니티케어가 제 역할을 하려면 보건의료 서비스에 관한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규정돼야 한다."

  통합돌봄 계획에도 일차의료는 “패싱”

"보건복지부의 계획안에도 ‘복지’는 있지만 ‘보건’, 특히 일차의료가 빠져 있다. 우리는 일차의료의 잠재력을 살려서 지역의료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일차의료가 패싱되면 사례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 지역사회 통합돌봄센터 개념도. 임종한 학장은 센터를 통해 복지나 돌봄, 보건의료 자원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차의료에 대한 인력 육성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수련 전공의들은 대부분 삼차의료의 당직을 서거나 그 역할을 떠맡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의 값싼 노동력을 삼차기관이 이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련 과정 4년 동안 2년은 삼차병원, 2년은 지역사회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사실 일차의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과 전문의들이 일차의료로 전직하고자 할 때는 그에 맞는 트레이닝을 지원하는 ‘의사 재교육 프로그램(Physician Retraining & Reentry)’을 도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국 뉴욕 주는 2014년 일차의료를 강화한 ‘Delivery System Reform Incentive Payment(DSRIP)’를 시행한 후 4년 동안 잠재적으로 예방 가능한 입원을 21% 감소시켰다. 이 정도로 의료자원의 낭비를 줄인다면, 그 성과를 소비자나 개원의사에게 되돌려주기에 충분하다."

  성숙한 시민이 참여해야 의료비 증가 억제

"지금 우리 사회는 고령화ㆍ와 양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의료에 대한 수요의 폭발은 엄청날 것이다. 정부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 커뮤니티케어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행정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가능하면 불필요한 의료 소모를 최소화하고, 나머지 자원을 사회적 약자가 쓸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는 중요한 기전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환자들이 건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하는 것, 즉 환자가 자조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주체로 서야 커뮤니티케어가 숨을 쉰다."

  “원칙적 측면에서 각자 입장 다르지 않다”

이 포럼은 19일 오후 2시부터 온라인(YouTube)으로 진행됐다. 패널로는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 김정애 간협 정책전문위원, 조윤미 (사)소비자권익포럼 공동대표,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건세 건국대 의전원 예방의학교실 교수, 정영훈 복지부 통합돌봄 추진단장이 참여하여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좌장을 맡은 홍윤철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장은 “우리는 오늘 커뮤니티케어의 정착과 관련하여 인력양성, 제도화, 자원배분 등의 측면에서 많은 숙제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철학적ㆍ원칙적 측면에서 각자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제도를 만들어 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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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란?

지역에 돌봄(care)이 필요한 사람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 중심의 돌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community)가 힘을 모아 노약자를 돌보는 서비스를 지향한다. 지난해 11월 4일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돌봄의 이념 및 시책 등 전반적인 사항을 규정한 <지역사회 통합돌봄법> 제정안을 국회에 대표 발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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