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차 서울유방암 심포지엄이 28일 노동영 서울의대 교수 정년 퇴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세미나로 열렸다.

1989년 여름, 예일대학. 이곳에서 연수를 하던 유근영 서울의대 교수는 뉴욕을 방문했던 노동영 교수로부터 “예일대학 캠퍼스를 보고 싶다”는 내용의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서울의대에서의 안면은 있었지만 실제 이야기를 나누고 학술활동에 관한 관심사를 알 수 있었던 두 교수의 인연은 이때 시작됐다.

두 명의 한국인 의사가 예일대학 캠퍼스를 거닐면서 사사로운 이야기부터 의사로서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했으면 한다는 느낌이 ‘통’하자 예일대학 캠퍼스는 곧 서울의대 캠퍼스로 다가왔다.

유 교수는 당시 암 역학을 공부하면서 유방암을 연구하기로 맘을 먹었다.

외과 의사 노동영 교수는 세부 전공으로 유방암 전공을 선택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유방암이 많지 않았지만 미국의 사례를 보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 유근영 서울대 명예교수가 ‘유방암연구에서의 융합’을 내용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1991년, 서울. 예일대학에서의 약속이 시작됐다. 임상정보를 외과에서 제공하면서 예방의학의 한계였었던 환자-대조군 연구가 숨통이 트였다.

최국진 교수가 회장을 맡은 ‘유방암연구회’의 간사를 임상과 기초에서 각각 맡으면서 융합연구는 싹을 튀우기 시작했다.

이 연구회는 향후 유방암학회가 창립되는 자극제가 됐고, GBCC가 세계적 학회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놀라운 국제화 속도를 보인 이 학회의 초기는 유근영 교수와 노동영 교수 등의 희생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연구회를 통해 데이터가 모아지면서 저널을 발행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두 교수의 공동연구는 100편 이상의 논문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유 교수의 평생 논문이 355편이니 대략 3편중 1편은 노 교수팀과의 공동연구인 셈이다.

노동영 교수는 유방암 뿐만아니라 글로벌 헬스 리더로서도 주목받았다.

사적 모임으로도 이어졌다. 유근영의 ‘근’자와 노동영의 ‘영’자를 합친 ‘근영교’에서 소주한잔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네트워크도 확대했다.

   
▲ 노동영 교수가 제9차 서울유방암심포지엄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두 교수를 30년간 끈끈하게 이어온 것은 어떤 촉매재가 있어서일까. 이민혁 순천향의대 교수의 이 질문에 두 교수는 한치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유근영, “노 교수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고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매우 큽니다. 국민에게 필요한 그 ‘무엇’이 같았습니다. 유방암 극복이 촉매가 되었다고 할까요. 자랑스런 교수로 존경합니다.”

노동영, “두 가지가 만나 새로운 하나가 되었습니다. 왜?가 없었어요. 그냥 좋았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었지요. 조건을 걸지 않고 함께 일해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조건’을 내걸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학제, 공동연구가 대세지만 20-30년전 병원 기반 유방암 연구 본격화, 학제간 공동연구 등은 우리나라 의학계에 커다른 반향을 일으켰다.

유근영 교수는 지난해 정년 퇴임했고, 노동영 교수는 내년 2월말 정년퇴임한다.

유근영 교수는 11월28일 노동영 교수 정년퇴임 기념으로 마련된 ‘제9차 서울 유방암 심포지엄 2020’ 온-오프라인 국제학술 세미나에서 ‘아름다운 동거’ 제하에 30년간의 인연을 소개했다.

두 교수의 새로운 30년 인연이 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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