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근영 교수

10월부터 주민등록번호를 새로 부여받거나 변경하는 경우 뒷번호 숫자가 무작위로 부여될 것으로 보인다.

1968년 12자리로 부여된 후, 1975년 현재와 같은 13자리 개인번호로 사용된 지 45년 만이다.

그동안 주민등록번호는 운전면허증이나 학생증과 같은 신분증명서에는 물론 은행구좌 개설이나 각종 공과금 납부, 병원 입원, 인터넷 회원 등록 등 거의 모든 일상생활에 사용돼 왔다.

그런 주민등록번호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주민번호에 생년월일, 성별, 출생지 등이 담겨있는 개인 식별 번호 유출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개정에 나섰다.

행안부는 주민등록번호는 한 사람에게 하나의 번호를 국가가 부여하는 일종의 ‘국민등록제도’로서 국가기관에 자신과 가족의 신상명세가 파악 당하는 통제목적으로 수립되고 발전된 것이라는 한편의 비판 목소리도 수용한 셈이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는 의학 분야에선 그 가치가 높다. 필자가 전공한 종양학 분야에서는 특히 그렇다. 역학(疫學, epidemiology) 연구가 대표적이다.

역학은 ‘인간에서의 발암 가능성’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의학 분야에서는 자의에 의해 발암물질에 스스로 폭로된 사람들을 모아 오랜 기간 동안 추적함으로써 ‘자발적인 발암물질 폭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등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학문의 영역이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인가?’를 평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흡연토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해 흡연자가 된 사람을 오랜 기간 추적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폐암 환자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가?’를 비교, 인간에서의 발암 가능성을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학적 연구결과는 발암물질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데 가장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증거다. 이는 10만 명 이상의 연구 대상을 10년 이상 추적해 폐암이 발생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위력을 발휘했다. 이렇듯, 의료분야에서는 건강보험통계, 사망원인통계, 암 등록사업 등 전산자료가 암 환자의 발생을 파악하는데 매우 유익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 일본에 비해 수십년 늦게 시작한 역학연구가 세계의학계에서 일본 보다 먼저 ‘한국 학계’를 찾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진 것도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한 각종 연구가 뒷받침된 배경중 하나다. 이런 개인인식제도를 가지고 있지 못한 외국 학자의 부러움을 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암의 원인을 규명할 목적으로 수행되는 역학적 연구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이제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일 만큼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올해 주민등록번호가 새로 바뀐다. 뒷 7자리는 본래 성별과 출생년도, 지역번호, 등록순서, 오류검증번호 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번 변화는 개인정보를 보호하기에는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IT기술이 어느 정도 보완되면 의학 연구목적으로도 영향이 없다. 주민등록번호가 우리나라 의학연구 도약의 탄탄한 받침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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