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창석 삼광의료재단 병리과 대표원장

외과 교수님의 질문

헤마톡실린(hematoxylin)은 천연 화합물로, 전세계적으로 현미경 관찰용 조직슬라이드를 제작할 때 세포의 핵을 염색하는 기본 염료로 사용하고 있다. 무색이지만 공기중에서 산화되면 특유의 보랏빛을 나타내는 헤마테인(hematein)로 변해 염색성을 나타내게 된다. 통상적으로 이 두 가지를 모두 합해 헤마톡실린(hematoxylin)이라 부른다.

헤마톡실린은 현미경으로 세포나 조직을 관찰하는 의료계 종사자나 생물학 연구자에게는 친숙한 용어이지만,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의류나 가죽 등의 여러 제품에 헤마톡실린이 염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사용에 역사적 유래가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오래 전 대학병원 병리과 전임강사 시절에, 외과 이용각 교수께서 조직 슬라이드를 보시더니 나에게 느닷없이 “헤마톡실린 염색을 얼마 동안이나 사용할까? 백 년? 이백 년?”이라고 물으셨다.

그 질문을 받고 한번도 헤마톡실린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없었기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 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장 이식술을 성공시킨 유명한 외과의사였고, 자신이 수술하신 증례는 영상의학검사나 병리검사를 반드시 확인하는 분이셨다.

1980년대 까지는 질병 진단과 연구에 병리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시절이었던 만큼 훌륭한 임상의사는 병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래도 외과의사로서 병리 슬라이드를 염색하는 헤마톡실린에 관심이 많으신 것을 알고 내심 놀랐으며, 이후에 나도 기회가 되면 슬라이드 염색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헤마톡실린 발견과 사용

헤마톡실린은 Hematoxylon campechianum 이라는 logwood tree에서 추출한다.

콩과 식물로 그 어원은 그리스어의 haima = blood 그리고 xylon = wood 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나무는 이름 그대로 암적색의 heartwood를 의미한다.

Campechianum 은 기원 장소인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해안 도시인 Campeche 를 의미한다.

그 지역 사람들은 이 나무를 Palo de Campeche 라고 부르며 간단히 Palo de Tinte, Palo Negro, “Spiny tree,” “Campeachy wood,” “bloodwood-tree,” 또는 logwood 라고도 부른다.

Haematoxylum 이란 학명은 1753년 스웨덴 식물학자인 윱살라대학의 Carl Linnaeus 교수가 명명하였다.

Hematoxylon campechianum 은 멕시코가 원산지로 알려졌지만, 베네주엘라, 카리브해 군도, 마다가스카르, 캘리포니아, 하와이 및 플로리다에서도 발견된다.

중남미 원주민인 마야인과 아즈텍인들은 헤마톡실린을 면직물과 모직물을 염색하는 염료로 사용하였고 잉크와 약제로도 사용하였다. 약제로는 주로 빈혈, 이질, 설사, 장내 기생충, 결핵, 월경 불순 등에 사용하였다. 또한 그 나무의 씨앗은 향신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헤마톡실린을 중남미 원주민 시대부터 지금까지 오랜동안 광범위하게 사용하였기에 원산지인 the City of Campeche가 유네스코에서 1999년 세계문화유적지로 지정되었다.

헤마톡실린의 의학적 이용

헤마톡실린은 조직학과 병리학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염색 시약이다. 통상적으로 에오진 (eosin, Greek Eós = “morning red,” dawn)을 대조염색 시약으로 사용하며, 헤마톡실린-에오진 엄색법 (간단히 H&E stain)은 현미경 관찰을 위한 슬라이드 제작시 기본 염색법이 된다. 헤마톡실린의 특징은 세포의 핵을 청자색으로 염색하는 것이다. 헤마톡실린은 염기성이며 양전하를 띠기 때문에 산성으로 음전하를 갖는 핵내 DNA 및 RNA와 결합해 청자색으로 염색되어, 이 염색상을 “호염기성(basophilic)” 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에오진은 산성으로 음전하를 갖기 때문에 염기성으로 양전하를 갖는 세포질과 결합하여 적홍색으로 염색되어, 이 염색상은 “호산성 (acidophilic)” 이라고 부른다.

헤마톡실린을 조직학과 병리학에 사용한 역사를 보면, 주변에 흔히 사용하던 염료를 슬라이드 염색에 사용하였던 것 같다. 1650년에 기록된 영어 문서에 의하면 확실치는 않지만 Robert Hooke이 조직을 염색하여 최초로 현미경으로 관찰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사실상 1803년에 Thomas Knight가 logwood 추출물로 식물을 염색하여 관찰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현재의 헤마톡실린-에오진 염색법을 확립한 사람은 Franz Böhmer로 1865년에 헤마톡실린으로 염색하기 위하여는 매염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표하였고 다양한 금속염을 매염제로 사용하여 조직과 세포 성분에 따라 특징적인 염색상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이로써 헤마톡실린은 조직병리학 분야에서 슬라이드 염색의 기본 재료가 되었다.

외과 교수님께 드리는 답변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헤마톡실린이 천연 재료에서 추출되는 것이므로 자연환경, 물 공급, 기후 상태 그리고 인간의 노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일정한 수확율을 보이고 있다. 만일 logwood가 멸종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1, 2차 세계대전 등의 전쟁을 겪으면서 헤마톡실린 공급이 부족한 경우가 있었지만 현재의 환경에서는 logwood가 멸종할 염려는 없다.

석탄을 증류하여 인공적으로 염료를 생산하기도 하고, 다른 식물이나 곤충 등에서 여러 염료를 생산하고 있으며 실제 헤마톡실린을 보조하는 특수염색으로 사용되고 있다.

헤마톡실린을 대체할 수 있는 염료로 chrome alum gallocyanin이 소개된 적이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병리의사들은 헤마톡실린-에오진 엄색법에 익숙해 있으며 의학교육에 계속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염색법으로 세포를 염색한다면 새로운 염색법에 익숙치 않은 병리의사들이 오진을 우려하여 선뜻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혹자는 최근에 면역염색법과 세포유전학적 진단 방법이 발전하고 있으므로 헤마톡실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병리학 등의 형태학은 퇴조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사물이나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관념 속의 변화보다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태와 변화를 선호한다.

가령 위암을 교육하거나 진단하는 경우에 육안 소견과 현미경 소견을 종합하여 위암의 형태와 암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방법이, 염색체 변화나 유전자 변화를 보이는 위암이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이제 이용각교수님의 질문에 답변을 드려야 될 것 같다.

“교수님! 헤마톡실린은 인류가 지속되는 한 의학과 함께 영원히 사용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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