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 주최로 ‘3·1운동 100주년 기념세미나-의학도 3·1운동의 선두에 서다’가 열렸다.

“1919년 조선총독부 보고자료에는 (3·1운동으로)구금된 학생 가운데 경성의전이 가장 많아 31명이고, 연희전문 7명, 세브란스의전 4명 등이 있었다.

매일신보 1919년 11월8일자에 따르면 검거돼 판결을 받은 학생은 경성의전 32명, 경성고보 29명, 세브란스의전 10명 등이 있다.

경성의전 김형기 1년, 이익종 10월, 김탁원·최경하 7월, 세브란스 의전 배동석 1년, 김병수 8월, 최동 7월 등 실형을 선고받았다.”

황상익 서울의대 인문의학교실 교수는 25일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문화원장 김희중) 주최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세미나-의학도 3·1운동의 선두에 서다’에서 “100년전 3월1일, 그날. 의대생들도 만세를 부르고 거리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 운동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국채보상운동, 정재홍 의거, 헤이그 특사 이준 순국 등 우리의 끊임없는 독립의지와 국제적 환경이 배경이 돼 발생하게 됐고, 참가자도 종교인, 학생, 농민, 노동자, 여성 등 각계각층에서 10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후에도 김익남 의학교 교관의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 등 의학도들의 활동은 쉼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이날 ‘의학교 교원과 학생들의 민족자주의식과 항일운동’ 주제발표에서 김익남, 김교준, 이재명 등 의학생들을 조명했다.

앞서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 국내외 배경과 역사적 의미-독립선언문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기조강연했다.

인하대 의학교육학교실 최규진 교수는 경성의학전문학교의 교육과 일상생활에서 만연돼 있던 민족차별과 그에 맞서 강렬했던 한국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설명했으며, 서울대 역사교육과 김태웅 교수는 한국 근대 학생운동이 사립학교 학생 중심으로 전형화되고 관립학교 학생들은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김상태 교수는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들의 3.1운동 참가가 매우 적극적이고 조직적이었다는 점, 그들의 항일운동이 신간회, 의열단 지원 등으로 지속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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