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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화 11:03
> 의계신문 창간 30주년 특집
     
‘병원에서 가정으로’ 이행 본격화 추세
경계의 소멸과 병원의 미래
2018년 07월 14일 (토) 10:46:18 메드월드뉴스 webmaster@medworld.co.kr
   
▲ 이상규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병원경영학과 교수
2012년 거대기업 코닥이 파산했다. 한 때 기업 가치로 세계 4위까지 올랐던, 절대 망할 것 같지 않았던 코닥은 디지털 시대로의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결국 세상에서 사라졌다. 역설적이게도 코닥을 망하게 만든 디지털 카메라 기술은 1975년 코닥연구소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코닥의 경영진들은 필름 판매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기술을 사장시켰다. 
 
그러나 1981년 소니가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시장에 내놓고, 1990년대 들어 니콘과 캐논 같은 기업들이 속속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면서 세상은 급격하게 디지털 시장으로 전환되었고, 새로운 세상에서 코닥의 설 자리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단 코닥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몰락의 길로 들어선 기업의 사례는 수도 없이 찾아 볼 수 있다.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상상을 뛰어넘는 혁신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세계에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데 병원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가 의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 세계적인 변화와 혁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2013년 5월 14일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즈에는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나의 의학적 선택(My Medical Choice)’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에서 그녀는 자신이 약 3개월에 걸쳐서 세 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서 자신의 정상 유방을 양쪽 모두 절제하였음을 고백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10년 이상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56세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전하면서 자신 역시 BRCA1이라는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 달했었는데 이 수술로 인해서 그 위험이 5% 미만으로 감소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 소식은 우리나라에서도 주요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의 이 예방적 유방절제술은 단순한 연예 관련 가십거리가 아닌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의료의 개념에 도전적인 의문을 던지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는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의료가 우리의 통상적인 사고의 범위를 넘어서게 될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받은 유방절제술은 개념적으로는 질병이 없는 상황에서 예방 행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병원 수술실에서 마취과 의사가 마취를 하고 외과 의사가 수술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통상적인 사고 체계 속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예방과 치료의 경계가 소멸되고 있는 현재 의료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예방은 담배 끊고 운동하는 것처럼 집에서 스스로 하는 것이고 치료는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또한 의료에 있어서 이와 같은 경계의 소멸은 비단 예방과 치료 사이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인구의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폭발적인 증가 앞에서 근대 의학이 시작된 이후 100여 년 이상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오던 급성기 병원 중심의 의료체계가 다양한 측면에서 창조적 파괴와 함께 경계의 소멸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 통상적인 예방과 치료의 경계가 허물어 지고 있다.
 
의료와 병원을 둘러싼 이러한 경계의 소멸을 최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급성기 병상의 급격한 감소이다. OECD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OECD 회원국에서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다른 미국의 연구를 보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의 13개 주에서 인구 1,000명당 입원 수가 5% 이상 감소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인구의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에 따라 과거의 상식으로는 당연히 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입원 진료가 실제로는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환자 개인의 삶의 질이라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가능하기만 하다면 환자들은 병원이 아닌 집, 혹은 집과 비슷한 환경에서 의료를 제공 받는 것을 원할 것이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도 많은 비용이 드는 병원보다 적은 비용으로 같은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정책의 방향은 그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환자들도 원하고 정부도 원했지만 기술적, 제도적 제약 때문에 일어나지 못했던 “병원에서 가정으로”의 이행이 이제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도 그리 멀지 않아 이 추세에 합류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전 세계적으로 급성기 병상 급속하게 감소
 
이러한 “병원에서 가정으로”의 이행은 병원들과 정부에게 중대한 과제를 안겨준다. 미국의 한 전문기관의 예측에 의하면 현재 전체 의료비의 60-70%를 차지하는 치료의 비중이 2025년경에는 30% 내외로 줄고 예방과 사후 관리의 비중이 40% 가까이로 증가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현재 병원의 경계 밖이라고 생각되는 예방이나 사후 관리에 병원들이 경계를 허물고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함을 시사하며 정부 정책도 이러한 혁신을 가속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미 IT 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들이 가능해지면서 의료에 있어서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고 만성질환 관리에 있어서 다양한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팀 중심의 접근이 중요해지면서 의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공급자의 경계도 흐릿해져 가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관련 정보를 스마트폰에 실시간으로 축적하고 있으며 유전자 분석 기술 등 BT 기술과의 융합으로 맞춤 치료나 맞춤형 건강증진 프로그램과 같은 새로운 의료가 창조되면서 의료서비스 영역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맞춤치료 등 새로운 형태의 의료가 창조되고 있다
 
이러한 경계의 소멸을 가속화하는 것은 개인이 소유하는 자신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의 급격한 증가이다. 똑똑한 만보계 정도로 생각했던 웨어러블 기기들은 급속하게 진화하면서 이제 질병의 예측이 가능한 수준으로 발달하고 있다.
 
2020년에는 세계 웨어러블 시장규모가 약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를 통해서 축적되는 데이터들이 인공지능과 결합하게 되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의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생활 전반에 변화를 주게 될 것이다. 
 
또한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달과 그 비용의 급격한 하락은 일반인들도 자신의 유전 정보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적어도 10년 이내에 개인이 소유하는 자신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의 양이 의료기관이 소유한 정보의 양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으며, 이는 현재의 병원과 의사 중심의 의료산업이 환자 중심으로 재편될 것임을 의미한다. 
 
앞으로의 개인은 자신의 건강과 의료와 관련된 수 없이 많은 빅데이터의 클라우드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며, 앞으로의 의료는 더 이상 바이오메디컬 사이언스가 아니라 이들 빅데이터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해지는 데이터 사이언스로 진화할 것이다. 병원들의 성패 역시 이들 데이터를 자신들의 진료와 사업에 얼마나 잘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지가 좌우하게 될 것이다.
 
▲병원과 의사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재편
 
개인의 유전 정보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프리바이버(previvor)의 등장이다. 가까운 미래에 개인들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 자신이 특정 암과 같은, 어떤 심각한 질환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암에 걸렸다가 이를 극복한 사람들을 서바이버(survivor)라고 하는데, 앞서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와 같이 아직 암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미래에 걸릴 암을 미리 적극적으로 치료해서 생존하게 된 사람들이 프리바이버인 것이다. 
 
이들은 아직 그 질환에 이환되지 않았을 지라도 해당 질환을 예방(혹은 치료)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같은 위험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소셜네트워크와 같은 연계를 통해서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앞으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95%가 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여성이 우리나라에 10,000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앞으로 이들은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엄청난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될 것이며 병원들 역시 이들에 대한 서비스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들 프리바이버의 등장 역시 앞으로의 의료가 우리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범위의 경계를 벗어나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가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병원을 둘러싼 경영 환경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을 가지고는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 수시로 나타나고 있고 의료 자체도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방향으로 진화해 가면서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의료를 둘러싼 모든 경계들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제 병원들은 현재의 법적, 제도적 장치로 구축된 경계 안에 안주해서는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책적 정비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의 방향을 보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의료의 모습이 미래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초하여,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미래의료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윌리엄 깁슨이 이야기한 것처럼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전 세계적인 변화가 아직 우리에게 퍼져 있지 않은 것을 우리에게 미래가 오지 않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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