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한 서울의대 정보의학 교수
의료는 서비스업이다. 1차 산업은 자원의 확보, 2차 산업은 자원의 가공이라면,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은 “문제해결” 산업이다.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문제의 해결을 돕는 활동이 서비스업이다. 자원의 확보(1차)나 가공(2차)도 결국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1차, 2차 산업은 결국 서비스 산업(3차)에 종속될 운명인 것이다. 
 
제조 강국 대한민국이 위기다. 한국은 세계 5대 제조업 중 항공을 뺀,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모두에서 수위권을 차지한 제조강국이다. 제조업이 우버나 아마존, 페이스북에 모두 종속돼버린다면? 우리에겐 끔찍한 악몽이다. 하지만 곧 찾아올 운명이다.
 
미래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혁신의 속도다. 자동차, 조선, 항공 산업은 아마존과 우버에 비해 그 혁신 속도가 너무 느리지 않은가? 도요타보다 아마존과 우버의 시가총액이 더 큰 이유다. 아마존은 지구상 모든 물류를, 우버는 모든 이의 공간이동을 지배하려 한다. 그러므로 아마존과 우버는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피할 수 없다. 카카오택시는 가상 택시회사일 뿐이지만, 아마존과 우버는 물자와 사람의 시공간적 이동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당신이 주문하기도 전에, 당신이 필요한 것들을 손에 쥐어줄 것이고, 이미 결제도 돼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원하는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아마존의 2시간 배송이 완성되는 날, 신선 식품 판매를 존립 근거로 삼는 이마트의 쇼핑몰의 높은 부동산 입지 가치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의료는 생로병사의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서비스업이다. 생로병사의 근원적 복잡성때문에 의료는 가장 전문적이고 동시에 가장 낙후된 산업이다. 미국 포춘지는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격전지로 의료를 지목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가 ‘원격의료’, ‘알고리즘 의료’, ‘유전체 의료’를 통해 시스템의 비효율을 해결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없던 일로 되었다. 의료영리화 논쟁에 막힌 탓이다. 한 시민단체는 “국민이 아닌 통신ㆍ의료기기 회사의 배만 불리려는 시도를 멈춘 것은 환영할 일”로 논평하기도 했다. 정치쟁점화 돼버린 원격의료 논쟁에 7년 세월을 허비했다. 전통적인 환자-의사 진료 부분의 변화에 대해 민감한 탓이다. 사회적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 
 
‘알고리즘 의료’는 근거기반 의료와 대비된다. 보수적 의료규제와 건강보험체계는 온전히 확립된 무결점 근거만을 요구한다. ‘알고리즘 의료’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이다. ‘유전체 의료’는 시작도 전에 난제에 부딪쳤다. 
 
최근 식약처는 이미지 분석을 통한 골연령 측정 분석장치를 승인했음을 보고했다. 신속하고 매우 선도적인 대응이지만 의료영상분석 ‘장치소프트웨어’의 승인일 뿐이어서 아직은 ‘장비화’되고 기계속에 갖혀있는 인공지능 정도만을 승인하는 단계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존, 우버와 같은 플랫폼 경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원격판독은 현재도 일부 수행되고 있지만, 현행법 상 ‘의료기관내 진료’라는 의료행위 규제와 ‘비영리’라는 자본투자 규제로 인해, 병원내 소규모 판독실 수준으로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곧 밀려올 플랫폼 경제의 파고 앞에 속절없이 무너질 운명이다. 비 진료 분야로, 사회적 갈등요소가 없는 ‘판독의료’ 분야부터 선제적 규제 완화와 투자 활성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이 필요한 이유다.
 
생로병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의료는 소멸되지 않는다, 농업도 달라졌을 뿐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다만, 예전의 낫 쓰는 솜씨나 모심기 능력이 더 이상 자랑할 일이 아닌 것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환자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처방전을 쓱 써 내려가면 충분했던 솜씨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오늘날의 농부가 최고의 수확을 위해 작물을 돌보고, 위기 사항에 대처하고, 위험에 사전 대응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작물의 상태와 시장의 동향을 분석하며 적재적시에 햇살과 영양을 공급하고 출하량을 조절함에, 정보 시스템과 로봇과 인공지능과 혼연일체가 되었듯이, 미래의 의사도 더 나은 진단, 치료, 예방, 재활을 위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수많은 데이터와 지능들의 선율을 멋지게 지휘하는 ‘사람-기계 혼연일체 (Man-Machine Hybrid) 의사’로 진화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 의료의 미래는 전적으로 의학교육 혁신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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