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대석 교수는 “고통스럽게 돌아가시지 않게 하고자 법을 만들었지만 실제는 연명의료를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고 우려했다.

“존엄한 임종의 자기결정권이 법으로 보장된다는 명제는 고무적이지만 실제 임상현장에서는 지나친 제재로 실효성 확보가 쉽지 않다. 적어도 의료진과 환자가 법을 이해하지 못해 어렵게 마련된 연명의료결정법이 사문화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보다 적극적인 연명의료중단 결정이 필요하다.”

2월4일 시행에 들어가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산파역할을 했던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높다.

무엇보다 지난 1년 동안 의료기관에서 질병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대략 20만명. 하루 평균 500명이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법 시행에 앞서 진행된 3개월간의 시범사업은 이러한 기대와는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기간 동안 연명의료계획서는 107건, 이 중 54명의 환자에게 실제 연명치료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허대석 교수는 이 결과의 맹점을 지적했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서울대병원을 포함해 총 10개 의료기관이 참여했고, 830명 정도가 시범사업 기간에 사망해 830명 중 107명(13%)만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셈이라는 것. 서울대병원도 계획서 작성 비율이 6%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러한 모순은 뒤로한 채 법 시행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수치만을 부각시키려 했다는 것으로 결국 시범사업은 실패라고 규정했다.

허 교수는 이같은 결과는 당초 입법 취지와 달리 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나치게 많은 규제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으로 봤다.

실제 환자 본인이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문제가 없지만 스스로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러한 경우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판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연명의료중단 결정 이행서를 모두 제출하고 심사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분쟁의 소지를 최소화 하기 위한 장치라고는 하지만 임상 현장에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 않다.

법에서 명시하는 모든 서류를 준비하고 절차를 준수해 연명의료 중단이 시행되는 비율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면 연명의료를 원한다고 봐야 한다는 게 이 법의 시각”이라고 강조했다.

의료진의 부담도 크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의사 2명의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지만 임상현장에서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야간이나 주말에 전공의가 당직을 서고 있는 상황에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위해 담당교수를 호출할 수 있을 것인지, 의사가 적은 지방병원이나 요양병원은 더 심각하다.

무엇보다 보호자들에게 가족증명서도 요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갈등 역시 의료진이 감내해야 한다.

허 교수는 “고통스럽게 돌아가시지 않게 하고자 법을 만들었지만 실제는 연명의료를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고 한탄했다. 모법은 나쁘지 않았는데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복잡해진 게 문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어 “연명의료결정법은 일본은 1페이지, 미국은 2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는 43페이지로 연명의료 중단을 의료인에게 맡기고 있는 것과 달리 법이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호스피스와 연명의료의 혼선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암, 에이즈(AIDS),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COPD), 만성간경화 등으로 대상을 제한하고 있는 호스피스와 연명의료를 혼동하는 탓에 자칫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경우 대상질환이 정해져 있지만 연명의료결정은 기저질환 제한이 없다. 연명의료에서 제한하는 것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투석기 △항암제 등 구체적인 연명의료를 의미한다.

허 교수는 “이러한 혼선은 법에 말기와 임종기를 별도로 구분했기 때문으로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러한 구분을 한 곳은 없다”면서 “환자가 아닌 정책 편의에 의해 초래된 상황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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