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체폐이식 모식도

 원인을 모르는 폐고혈압으로 심장이 이미 한번 멈췄고 언제 다시 멈출지 모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던 20살 딸에게 부모의 폐 일부를 각각 떼어 이식하는 생체 폐이식 수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폐이식팀은 지난 10월 21일 말기 폐부전으로 폐의 기능을 모두 잃은 20살 오화진씨(여)에게 아버지 오승택씨(55세)의 오른쪽 폐의 아래 부분과 어머니 김해영씨(49세)의 왼쪽 폐의 아래 부분을 떼어 이식해주는 생체 폐이식을 시행해 건강하게 회복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생체 폐이식 성공은 국내에서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는 300여 명의 말기 폐부전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폐는 우측은 세 개, 좌측은 두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폐암 환자들의 경우 폐 일부를 절제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생체 폐이식은 기증자 두 명의 폐 일부를 각각 떼어 폐부전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으로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 안전한 수술방법이다.

환자는 2014년 갑자기 숨이 쉽게 차고 체중이 증가하면서 몸이 붓기 시작했고 특별한 이유 없이 폐동맥 혈압이 높아져 폐동맥이 두꺼워지고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내보내기 어려워져 결국 심장의 기능까지 떨어지는 특발성 폐고혈압증으로 진단받았다.

2016년 7월 환자는 심장이 정지되는 위험에 빠졌으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고 다시 심장마비가 온다면 소생 확률이 20%에 불과했지만 국내 이식수술 규정상 우선적으로 뇌사자의 폐를 기증 받기 위해서는 폐질환 자체가 악화돼 인공호흡기를 삽입해야 한다.

국내에서 뇌사자 폐를 기증받기 위해 대기하는 평균기간이 1,456일(2016년 국립장기이식센터)로 서울아산병원에서만 2014년부터 2017년 7월까지 뇌사자 폐이식 대기자 68명 중 사망한 환자 수가 32명으로 절반에 가깝다.

그러나 환자의 부모는 일본에서 생체 폐이식으로 명성이 높은 교토의대병원 히로시 다떼 교수에게 해외 원정이식을 위해 연락하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지난 10년간 폐이식 대기자들의 허무한 죽음을 지켜보며 생체폐이식이 폐이식 대기자들을 살리기 위해 2008년 이후 수차례 히로시 다떼 교수를 찾아가 생체폐이식 수술 노하우를 전수받는 등 준비해왔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긴급회의를 열고 현행법상 합법은 아니지만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생체폐이식을 위해 지난 8월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와 의료윤리위원회를 열은데 이어 흉부외과학회와 이식학회에 의료윤리적 검토를 의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으며 정부와 국회,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대한이식학회에 보고해 생체폐이식 수술의 불가피성을 설득한 끝에 10월 21일 오전 8시 환자를 가운데 두고 양 옆 수술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수술대에 올랐다.

▲ 박승일 교수와 오화진양 가족

수술을 직접 집도한 흉부외과 교수들 외에도 마취과,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감염내과 등의 교수진들과 간호사, 심폐기사까지 총 50여 명의 의료진들은 저마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고 이식에 성공했다.

중환자실 집중치료를 받은 화진씨는 수술 후 6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떼고 11월 6일 일반병동으로 옮겨지는 등 현재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딸을 위해 폐의 일부를 기증했던 화진씨의 부모도 수술 후 6일 만에 퇴원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오화진씨는 “수술 전 숨이 차서 세 걸음조차 걷기 힘든 상황에서 부모님과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후 6일 만에 처음으로 의식이 돌아온 날이 마침 생일날이었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감격과 감사한 생각만 들었다.”고 밝혔다.

생체폐이식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일본은 1년, 3년, 5년 생존율이 각각 93%, 85%, 75%로 국제심폐이식학회의 폐이식 생존율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생체 폐이식 수술의 의학적 안전성을 인정받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생체 폐이식은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후 201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400례 이상 보고되고 있으며 이번 수술에 참관한 히로시 다떼(Hiroshi Date) 교수는 연간 평균 10건 이상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1998년부터 2011년 사이에 시행된 생체 폐이식의 5년 생존율을 88.8%로 획기적인 성적을 보고하기도 했다.

수술을 집도한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는 “생체 폐이식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다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하는 환자들, 특히 소아환자들에게 또 다른 치료방법을 제시한 중요한 수술이다”라고 소감을 밝히고 “기증자 폐엽 절제는 폐암 절제수술의 경험으로 흔히 시행되는 안정성이 보장된 수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최세훈 교수는 “이번 생체 폐이식 수술은 뇌사자 폐이식 수술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과 딸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의 강한 의지가 만나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게 되었으며, 예상대로 공여자와 수혜자 모두가 안정적인 상태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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